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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섣부른 마음 후에

by 디어샬럿 2017. 1. 20.

 

마음에는 책임이 따른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마음이란 얼마나 가벼우며, 앞을 내다보지 않는 사랑은 또 얼마나 무책임한가. 아끼는 마음의 밀도가 높아져 사랑의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임계치에 다다를 때가 있다. 애틋한 마음들이 응집되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위력을 지닌 찰나이자 한 점의 순간. 경험상, 이때야말로 잠깐 쉬어야 한다. 우주의 빅뱅이 아주 작은 점으로 시작됐듯, 마음의 임계점이 지난 후엔 겉잡을 수 없는 행동이 따른다. 점은 상상을 품은 침묵의 한계치이자, 이전 세상으로의 종언을 고하는 마침표인 셈이다. 점을 마주하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내 행동의 열기를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상대와 세계가 치밀한지, 상대와 그 너머의 상대가 보이는 그 어떤 반응에도 내가 충분히 굳건할 수 있는지. 서로의 애정에 대한 열전도율을 알아가는 시간이래도 좋을 터다.

애정은 무게이기도 하다. 사랑이 삶에 끼치는 무게는 천차만별이다. 믿음으로든 시간으로든 굳건한 삶은 급전직하로 가속이 붙은 애정의 무게도 거뜬히 받아낸다. 하지만 모래밭에선 탁구공도 흔적을 남긴다. 상대도 나도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상태의 애정은 별 것이 아니어도 버겁고 무겁다. 아인슈타인이 설명한 우주 공간의 쇠공처럼, 버거운 사랑은 그물 같은 서로의 성긴 시공에 굵직한 왜곡을 남긴다. 과정과 숙고로 단단해진 후라야 아무리 묵직한 애정이 굴러도 바탕이 변형되지 않는다. 말은 이렇게 쉬운데,

행동이 참 어렵다. 섣불리 펼친 애정이 나와 상대와 세상에 의도치 않은 흔적을 남겼다. 애정의 쇠공은 무르디 무른 판에서 수도 없는 굴곡을 만들었다. 사랑의 중량과 열기를 감당할 만큼의 충분히 단단한 판을 나는 아직 만들지 못했던 거였다. 내 행동의 잔열이 그 조밀한 것들과 세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그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기에 마음이 무겁다. 그토록 작은 손짓에도 그만치 많은 생각이 다져져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자연의 법칙은 더없이 냉정했고, 약육강식이 활어처럼 튀어오르는 현장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가슴에 움푹움푹 구덩이가 패이는 일이었다. 그 작은 사랑에도 책임이 필요했다. 돌아와 씻으며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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