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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RIP, Maestro.

by 디어샬럿 2014. 7. 24.

 

 

 

 

 

 

  불현듯 그가 떠올랐다. 사흘 전 세상을 떠난 마에스트로. 음악도 인생도 거칠 것이 없었던 천운의 지휘자. 마젤은 5~60년대 혜성 같이 등장해, 이른 나이에 뉴욕필을 지배했다. 이 이상 그의 타고난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증명할 이력도 더 없을 터다. 그의 인생은 현란한 음악적 성과로 가득하다. 이런저런 평가와 개인적 취향은 차치하고서라도.

  생전 그의 음악을 그리 찾아듣는 편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되레 내 타입이 아닐 때가 더 많았다. 특유의 과하다 싶으리만큼 빠른 템포 가운데서도 중량감은 다소 떨어지는 해석이 어딘지 이질스러웠다. 음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담는다기보단 낭창하게 뛰놀도록 내버려두는 느낌이랄까. 어떤 면에서는 약간 가벼운 감도 없잖았다. 무게 있는 곡에서는 영 힘을 못 쓰는 것 같은. 역시 미국식이구나 싶은, 어쩔 수 없는 인상이었다. 특히 그의 베토벤은 정말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우스운 기준이지만, 나는 지휘자의 역량을 베토벤 음악의 구현도와 비례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젤이라면 더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을 듣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마젤 추천 리스트에 자주 올랐던 곡이다. 시벨리우스 하면 느릿한 템포에서 오는 자아성찰적 분위기와 섬세한 음의 조화가 백미 아니었던가?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다. 기우였다. 이렇듯 풍부한 색감으로 덧칠된 시벨리우스라니. 다소 빠른 박자감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아니, 이 해석에서만큼은 마젤 특유의 템포감이 곡을 더 살리고 있는 것도 같다. 어쩜 이렇게 알록달록할 수 있을까. 50분 내내 숨을 죽이고 들었다. 이런저런 주관을 모두 떨쳐버린, 음 자체로서의 순수한 음악의 세계가 한없이 퍼져나가는 느낌. 온전한 음악에 완전히 매료됐다. 화려한 명성과 이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모두가 사랑하는 덴 이유가 있다는 불멸의 진리를 새삼 깨달으며. 여전히 취향 아닌 것들이 많지만, 조금씩 마젤의 진가를 알아가게 될 것 같다.

  여담으로, 그는 한국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이랄 것도 꽤 있다.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겸 총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2008년, 평양으로 건너가 동평양대극장 공연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장한나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이이기도 하며, 2010년에는 그녀의 지휘자 데뷔 무대에 직접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2004년 이후로 2~3년 간격으로 내한공연을 가졌으니, 현대 거장 중에선 한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 이로 손꼽힐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2006년의 공연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을 터. 선율 고운 애국가와 한국 가곡들로 좌중을 감동시킨 무대였다. 코드가 맞았는지 그 뒤에도 몇 번이나 한국을 찾아주었다. 상당히 최근까지도 우리나라를 들렀다. 아시아 투어였던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이었다. 이미 팔순을 넘긴 노신이었지만.

  갈수록 이렇다 할 개성이 사라지고 있는 클래식계다. 자신만의 질감과 색채로 음악을 풍성하게 한 황금시대의 마지막 마에스트로. 그것만으로도 로린 마젤의 타계는 슬퍼 마땅한 일이다.​ 음악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박학다식했던 지성인. 그러면서도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건 페스티벌을 정력적으로 준비하며 무대의 최전선에서 분투했던 타고난 음악인이었다. 부디 영면에 드시길...

 

 

 

 

 

  2008년 평양 공연에서 선보인 <캉디드 서곡>, 레너드 번스타인 작. 이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주다. 마젤은 역시 이런 류의 음악이 어울린다. 장난스러운 듯 경쾌하게 질주하면서도 풍성한 음색이 한껏 드러나는, 한없이 즐거운 음악. 그러고 보니 번스타인과 마젤의 음악 스타일이 어딘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도 같고.

 

 

 

 

 

  평양 공연에서 연주한 아리랑. 정명훈 씨와 라디오프랑스의 협연 버전도 잘 알려져 있지만, 해외 거장으로선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회자됐던 연주다. 눈물나리만치 고운 선율. 괜스럽게 울컥해지네.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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