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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어느 새벽의 9번 트랙

by 디어샬럿 2014. 7. 29.

 

 

 

  Thriller 앨범을 어둔 때 듣는 건 잠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좋았어 오늘은 댄스댄스 댄스타임이야! 라며 까만 밤을 불태우려 작정한 젊은 마이클잭슨의 패기가 사방에서 번뜩이는데, 그만 거부할 요량이 없어진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듣다간 달밤에 문워크 체조라도 해야할 판이다. 십여 년 전 깊은 밤, Off The Wall과 다르지 않겠거니 하는 생각에 이 앨범을 재생했다 혼쭐난 적이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잔뜩 솟아오른 신경 마디마디가 가까스로 내려앉으려는 잠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었다. 결국 마이클잭슨의 품 큰 양복만큼이나 하얀 밤을 지새우고야 말았다.

 

  그러나 유일하리만치 어둠이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 9번 트랙, The Lady in My Life. 로드 템퍼튼 작사작곡에 퀸시존스 프로듀싱. 앨범 내 세 곡뿐인 발라드이자, 두 곡뿐인 마이너 코드곡 중 하나. 앨범에서 드문 요소들이 공교롭게도 한데 모였다. 그래선지 가장 이질적인 넘버이기도 하다. 웬 바람이 불어 듣고 있긴 하지만, 여러모로 앨범과 썩 어울리진 않는단 생각은 여전히 한 켠에 든다.

 

 

 

 

  채 가시지 않은 열기를 뿌리까지 빨아들일 것 같은 둔중한 신디사이저음과, 답지않게 쓸쓸한 일렉트릭 기타음이 주거니 받거니 서두를 연다. 너무나 맑아 공허하기까지 한 마이클잭슨의 음성이 소란을 평정하듯 한 차례 울리고. 80년대 느낌이지만 상당히 다듬어져 외려 포근하기까지 한 전자음을 기반으로, 겸연쩍게도 진지한 멜로디가 이어진다. 하얗게 불타오르던 사운드들이 무안해지리만치 다시 찾아온 깜깜한 밤하늘 같은 선율. 온갖 강렬함을 지나 급히 맞는 침잠은, 이 앨범을 접한 지가 곧 두 자릿수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조금은 당황스럽다. 곡은 매사 돌진할 줄밖에 모르는 20대의 열혈청년에게 불현듯 찾아온 삶을 향한 성찰과 침묵의 시간 같았다. 반백의 순례자에게나 어울릴 법한 일상 같은, 제자리를 잃은 이질감.

 

  각종 기록을 몰고 다녔던 앨범 안에서도 이 곡은 조용한 편이었다. 수록곡 중 빌보드의 부름을 받지 못한 두 곡 중 하나였는데, 그마저도 나란히 탑10에 실패한 Baby Be Mine에 비해 주목도는 훨씬 떨어졌다. 다들 생각이 비슷한가보다 하며 마이클잭슨과 퀸시존스의 선택에 의문까지 품었더랬다. 25주년 기념 앨범까지 기어이 산 후엔 궁금증이 더 깊어졌다. 정규 미수록곡인 For All Time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다. 앨범의 한글판 가이드문을 작성한 한상철 씨의 말마따나 '왜 탈락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곡이었다. 어째서 The Lady in My Life였는지? 결코 호의적이지 못한 질문들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그렇게 애정을 갖지 못한 게 지금까지였다.

 

  그토록 길었던 외면치곤 뜬금없는 끌림이다. 건넛집 불 켜진 창들이 수명을 다한 별처럼 점멸하는 새벽, 들르지 않는 잠을 기다리다 이 곡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제법 센티멘털한 곡이긴 했다. 젊은 마이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도 꽤나 좋았지. 아, 가만보니 사운드도 세련된 구석이 있었어. 이리저리 흩어진 애정의 퍼즐이 묘하게 합리화의 모양을 짜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꺼내 듣고 있다. 심지어 노트북을 꺼내 장황한 감상까지 끄적인다. 이러다 지겨워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복하기까지. 한 번을 제대로 듣는 것도 가까스로였는데. 스릴러 CD를 돌리면서 이 노래를 이렇게까지 귀 기울여 들은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겠다. 느닷없는 욕구와 그를 허용하는 물리적 시간이 맞아떨어지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으니까. 다시 찾아올지 장담할 수 없는 순간. 느긋하게 음에 몸을 맡길 뿐이다.

 

 

 

 

 

  The Lady in My Life의 원래 버전. 6분이 넘는 꽤 긴 곡이다. LP의 제한된 시간 탓에 1분 가량이 짧아진 '개정판'이 실리게 됐다. 1절 후렴구 및 코러스와 2절이 통째로 삭제됐는데, 원본을 듣고 수정본을 들으면 확실히 1절 도입부와 후렴구가 살짝 어색하긴 하다. 원본에선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티시모로 이어지는 음의 층이 부드러운 데 비해, 앨범 버전선 메조피아노가 생략된 채 포르테로 건너뛰는 감이 있다. 그래도 음질과 백그라운드 사운드가 한결 개선된 앨범 버전이 확실히 듣기는 편하다. 팬들은 원곡 버전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긴 하더라만.

 

  이 영상 밑에, 두 자릿수의 공감과 함께 "남자들이여, 잘 봐둬! 네 여자에게 고백할 때 이 가사를 읊으란 말야!"란 댓글이 있어 혼자 옅게 웃었다. 글쎄, 고백멘트 치곤 좀 진득한 것 같은데...

 

 

 

 

 

 

  니요와 맥스웰의 The Lady in My Life. 워낙 타고난 목소리꾼들이라 그런지 노래에 참 잘 녹아들었다. 이렇게 듣고보니, 그랬다. 이 노래가 소울풍이 강한 멜로디 라인을 갖고 있었다. 진성과 가성을 무리없이 넘나드는 단단한 기교도 요구된다. 영 쉽게 불러서 별 생각없이 들었는데, 녹록지 않은 노래다.

 

  두 사람 모두 음색과 기교는 출중하지만, 자칫 과하게 짙어질 수 있는 노래의 완급을 담백하게 조절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못하다. 맥스웰은 고음부에서 생각보다 힘을 못 쓰고 ― 한편으론 맥스웰의 진성이 이 곡과 썩 어울릴 것 같진 않다 ―, 니요 버전은 중반부 이후 트럼펫이 돌연 곡의 낭만을 깨는 게 좀 흠이기도 하다.

 

  이들이 부르는 양을 보며 마이클잭슨이 상당한 보컬리스트였단 사실을 새삼 상기한다. 이래저래 시달린 삶도 삶이지만, 역량에 비해서도 평가가 참 박했던 인물이다. 여러모로.

 

 


Thriller

아티스트
Michael Jackson
타이틀곡
Thriller
발매
1982.11.30
앨범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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