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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먼저 그 거짓된 사람의 아들, 살아 움직이는 독선의 말(씀)부터 이 땅에서 내쫓아야 한다. 그의 독기 서린 입김이 너희 순진한 영혼을 오염시키고 야훼의 누룩이 이곳에서 뜨는 것을 막아야 한다. 너야말로 진정한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대지와 인간들을 지켜야 한다. 어쩌면 그 거짓 ‘사람의 아들’은 자질구레한 기적을 일으킬 권능을 숨겨왔을지도 모르고, 남달리 길고 미끄러운 혀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너는 그저 한 무력한 사람의 아들로 그와 싸워야겠지만, 그래도 이 대지의 인간들은 언제나 네 편에 있음을 잊지 마라. 보다 높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너의 동류(同類)를 위해 네 힘을 다 쏟고, 멀리 하늘에 있는 왕국이 아니라 너희가 발 딛고 선 대지를 위해 네 슬기를 다 펼쳐라.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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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왜 갑자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버스를 타는데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인간의 선(善)을 향한 의지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왜 우리는 선을 따를까. 동정도 공명도 본질은 아닐 터다. 누구 말마따나 인간의 내재적 본성과 반복된 사유의 결합인지, 혹은 신의 선의에 의해 부여되고 선택되어진 결과인지. 재난과 풍요는 선악을 불문한다. 선량한 사람들에게도 고통은 스미고 악한이 보란듯이 잘 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왜 선을 택할까. 한동안 끙끙 고민했지만 어려웠다. 역시 인류의 난제 다웠다.
소설 <사람의 아들>은 '신'을 바탕으로 이 의문을 풀어간다. 피살 사건을 맡은 남 경사가 '민요섭'이라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피살자의 행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의 삶과 종교적 회의, 신념을 '민요섭의 노트'로 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른바 액자식 소설이다. 민요섭은 뛰어난 식견을 가진 신학도였으나, 2학년 무렵 돌연 교의에 반발하고 자퇴한다. 비리로 얼룩진 모 교회의 장로를 성토하다 되려 장로 후처와의 간음 음모를 받고, 내쫓기든 내려간 부산에서 하숙집 아들 조동팔에게 '자신만의 교리'를 조용히 설파한다. 이후 그들의 행적은 전국에 걸쳐 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민'과 '조'는 맨발의 천사들로까지 알려졌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한편, 남 경사는 민요섭의 노트에 흥미를 느낀다.
민요섭의 노트는 아하스 페르츠의 구도 기록과 종교적 잠언으로 가득차 있다. '액자 내 플롯'의 주인공인 아하스 페르츠는 민요섭의 종교적 고민이 투영된 인물이다. 그는 풍족한 가정에서 우수한 유대교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테도스라는 현인을 만나 종교의 모순을 직시하고, 아삽의 첩과 사랑에 빠지면서 유대교에 깊이 회의한다. 이후 그의 여정은 신을 찾기 위한 방랑의 연속이다. 셈 족, 헤테 족, 조로아스터 교, 힌두교는 물론 불교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을 누빈다. 십 년의 방황 끝에 그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하스 페르츠는 해답을 구했다. 그러나 민요섭은 그렇지 않았다. 조동팔도 마찬가지였다. 위안을 얻지 못했고, 각자의 '배신'을 겪었다. 야훼의 모순에 반발해 '새로운 신'을 찾았지만, 새로운 교리 안에서 그와 조동팔 역시 모순에 빠지고 만 셈이었다.
소설은 선악은 물론 존재 그 자체와 그를 있게 한 초월을 고밀도의 문장으로 엮어냈다. 특히 아하스 페르츠 부분에서의 종교 지식은 유수의 세계문학에서도 찾기 힘들 만큼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21세기 초엽 숱한 설화로 문학적 명성에 흠집은 갔지만, 이문열은 이문열이다. 날카로운 문장으로 빚어낸 삶에의 묵직한 성찰이 가슴을 무겁게 울리는 책. 이토록 생을 자책하고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 모두가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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