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편린 사이/책

<첫사랑>, 이반 투르게네프

by 디어샬럿 2016. 1. 24.

 

 

 

  『 그녀는 재빨리 내게로 몸을 돌리더니, 두 팔을 활짝 벌려 내 머리를 끌어안고는 뜨겁고 힘찬 키스를 퍼부었다. 그 긴 이별의 키스가 누구를 찾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그러나 나는 굶주린 듯 그 달콤한 맛에 취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다시는 반복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09, <첫사랑>)

 

 

 

 

  내 첫사랑은 수학책 귀퉁이에 깨알 같이 끄적인 글자들과 함께 사라졌다. 사전적 의미만 아니라면, 나는 열다섯 무렵에 첫사랑을 시작했다. 당시 수학선생님은 어떤 의미에선 조금 별난 분이셨다. 주에 한 번 꼴로, 수업 전 교과서 귀퉁이에 '지금 이 순간 피어오르는 생각'을 두세 줄 정도로 쓰라 하셨다. 그때의 나는 학생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에 수반된 이런저런 것들을 제외한 남은 생각의 공간을 모조리 '그 사람'에 할애하고 있었다. 소녀의 감수성을 꾸역꾸역 먹고 잔뜩 무거워진, 그러나 어디에도 풀어둘 수 없었던 첫사랑을 방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신나게 써 내려갔다. 연심은 들판을 달리듯 지면을 내달렸다. 가 닿지 못하는 말만큼, 글로써 기름종이들의 빈칸마다 암호 같은 사랑을 새겨넣곤 했다. 그러나 결국엔 나 역시 예의 비련의 상투가 넘쳐나는 첫사랑 왕국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과 이뤄지지 못한 바람들이 드문드문 스민 수학책은, 이사와 동시에 소각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투르게네프의 민음사 판 <첫사랑>은 중단편선이다. 총 세 작품이 실려 있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다. 그러나 하나를 향해 있다.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실'이다. 첫사랑 지나이다를 아버지 그리고 죽음에 빼앗긴 블라지미르, 평안치 못한 일생과 잘못된 결혼이라는 족쇄에 묶여 사랑했던 리자를 포기해야만 했던 라브레츠키, 귀머거리 농노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여자도 강아지 무무도 지켜낼 수 없었던 게라심까지. 한때나마 이들을 감싸안은 사랑의 형태는 다르지만, 상실의 경험만은 인물들의 가슴을 관통하며 공유된다.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 법한 이야기들이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첫사랑>만 봐도 그렇다. 아버지와 아들이 연적이 돼 버리다니, 발칙하기가 그지없다. 플롯만 보면 막장이라든지 반윤리적이래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사람에 따라선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는 이 소설이 그럼에도 잔잔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누구나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투르게네프는 더없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 모든 상실에 봄볕 같은 온기를 채워나간다. <귀족의 보금자리> 중 여름밤 어느 길목 리자를 바라보는 라브레츠키의 시선을 묘사한 부분에선, 흐뭇하게 들뜬 고동의 한가운데 놓인 듯한 기분마저 든다.

 

  사라질 줄 알기에 더욱 놓을 수 없는 매혹적인 상실의 기억들. 아프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워 언제고 다시 돌아보고픈 반짝이는 어느 시절. 투르게네프는 결국 이렇게, 사랑을 이야기한다.

 

 

---

 

 

--  나는 줄곧 겁에 질려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것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아침놀이 물들었을 때 종루 주위를 나는 제비 떼처럼, 공상은 언제나 같은 환상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면서 장난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노래처럼 경쾌한 시나 황혼의 아름다움이 자아낸 눈물과 우수를 통해,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마치 봄풀처럼 파릇파릇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p.13)

 

--  나의 ‘열정’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지금도 기억하건대, 당시 나는 직장에 처음 들어간 사람이 느끼게 마련인 감정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이미 단순한 어린 소년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 나는 그날부터 나의 열정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부터 나의 고통도 시작되었다고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이다가 없으면 나는 슬픔에 빠지곤 했고,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p.51)

 

--  오, 청춘이여! 청춘이여! 그대는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다. 그대는 마치 우주의 온갖 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우수도 그대에게는 위로가 되고, 슬픔조차도 그대에게는 잘 어울린다. 그대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며 대담무쌍하다. … 어쩌면 그대가 지닌 매력의 모든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의 힘을 다른 무엇을 위해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바람에 흩날려 보내는, 바로 그런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또 우리들 각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낭비자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아아, 만일 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해냈을 텐데!” 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p.120, <첫사랑>)

 

 

--  “난 자네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이제야 알겠네.” 새벽 2시가 지나서 바로 그 미할레비치가 소리쳤다. “자네는 회의주의자도, 환멸가도, 볼테르주의자도 아니네. 자네는 게으름뱅이야. 그것도 순박한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교활하고 의식이 있는 게으름뱅이네. 순박한 게으름뱅이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벽난로 위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지.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 그런데 자네는 사색하는 인간인데 누워있단 말이야. 자넨 무언가를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자네는 실컷 먹은 배를 위로 향하고 누운 채,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게 부질없고 아무 소득도 없는 어리석은 일이니까 누워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어. … 더욱이 자네와 같은 모든 인간들, 자네 동료들은 모두.“ 미할레비치는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박식한 게으름뱅이들이야. … 자네들의 경우 그 보잘것없는 지식의 도움을 받아 파렴치한 나태와 추악한 태만을 정당화하고 있단 말이네.“ (p.251)

 

--  저녁노을도 사라지고 밤이 되었으나 대기는 더 훈훈해졌다. … 그는 여름밤의 매혹에 휩싸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갑자기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오래전부터 낯익고 감미로웠던 듯이 느껴졌다.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한창 피어나는 청춘의 삶이 바로 이 고요 속에서 느껴졌다. … 별들은 엷은 연무 속에 사라지고, 이지러진 달이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흐르는 달빛은 푸른빛을 뿌리며 하늘 가득히 퍼지고, 그 옆을 흘러가는 엷은 구름에 뿌연 금빛 반점들을 수놓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두 눈을 촉촉이 적시고 사지를 보드랍게 감싸면서 자유롭게 흘러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라브레츠키는 즐거웠고, 그 즐거움에서 기쁨을 느꼈다. (pp.265-266, <귀족의 보금자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