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20주 연속 전미 베스트셀러에 오른 동시에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에 올랐었던 이 ― 라는, '전설'로만 들었던 작품이자 작가였다. 영어로 쓰인 책이라 한국문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따름인 역작이다. 배경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 중공군 개입 직전 국군 통치기의 평양. 공산당 비밀경찰에 의해 사살된 열두 목사와 와중에 살아남은 신 목사(+한 목사) 사이의 '진실'을 중심에 두고 책은 다양한 논제를 펼쳐낸다. '진리'를 위해 사건에 굳게 입을 닫은 신 목사, '대의'를 위해 진실을 숨기려는 장 대령, 진실은 숨길 수도 없고 숨겨서도 안 된다는 이 대위. 이 세 인물의 갈등이 핵심주제를 형성해간다. 여기에 처형된 목사 중 하나였던 아버지의 최후를 알고자 하는 박 군(박인도)과, 처음엔 신 목사에 반대했으나 차츰 의미를 알아가는 고 군목이 합세한다.
인물들은 각자의 신념과 사정에 기반해 진실에 접근해간다. 반목하지만 이해하고, 삶과 인간과 절망과 희망을 인식한다. 이들이 합(合)이자 진실 그리고 진리에 이르는 과정은 뭉근한 깨달음마저 준다. 특수성을 통렬히 관통하는 보편성의 힘이랄까, 도정일 씨 말마따나 "문제구성력"이 가지는 인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내내 압도당하는 느낌. 결국 톨스토이가 남긴 평생의 난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반복인 셈이다. 그리고 답은, 결국은, 그래도 산다는 것이 아닐는지.
작품은 전쟁의 참상에서도 기세를 꺾지 않는 삶의 의지와, 그를 지키기 위한 방향성을 말한다. 도무지 손을 놓을 수가 없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듯한 묘사, 개성으로 빛나는 정의를 안고 사는 인물들과 생의 논제들을 꿰뚫는 문제의식까지. 여기에 휴머니즘까지 가미됐으니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전반적으로 배인 종교색이 결코 옅다곤 할 수 없지만, 그마저도 끌어안는 진한 '생(生)의 색'에 마음이 젖어드는 작품. 생의 어둠을 '십자가로' 짊어지고 희망의 언덕을 가리킬 수 있는 모든 이가 순교자라고, 소설은 외치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장을 엄지로 슥슥 훑으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읽길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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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말일세, 첫 백병전을 치르고 살아남았어. … 괴뢰군 일개 중대와 어느 골짜기에서 야밤중에 부닥뜨려 총검으로 백병전을 치른 거야. 양쪽이 모두 돌격했는데 처음엔 정규 백병전 같았지. 그러나 잠시 후부터는 쌍방이 온통 뒤범벅이 되어 난투전이 벌어졌어. 문제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인 데다 양쪽이 모두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어. 우리가 어느 쪽을 죽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네. 모두 똑같은 언어로 “누구야, 너 누구야?”만 외쳐대고 있었으니 말일세. 처음엔 당황해서 멈칫거렸지만 그것도 잠시고 모두가 뭐랄까,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저 닥치는 대로 죽여 대는 거야. 갑자기 수류탄 하나가 터졌고 그 통에 모두 흩어지면서 등 뒤로 수류탄을 던져댔어. 한데 어떤 병신이 포사격 지원을 요청했지 뭔가. 캄캄한 밤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 자네가 만약 어느 산꼭대기에 서서 그 캄캄한 계곡을 내려다보며 거기서 벌어지고 있는 난투극을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pp.45-46)
-- 그의 두 눈은 대단한 밀도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와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난 얘기했었지. 당신도 결코 잘못이 없는 사람일 수는 없다고 말야. 그걸 빨리 깨달을수록 자기 영혼의 진정한 구제를 위해 좋을 거라고 말해줬지.” 그는 말을 이었다. “난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부자관계엔 관심 없어. 심지어 내가 그에게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사실조차도 관심 밖의 일일세. 내가 생각하는 건 그가 광신자요, 신에 취한 사람이었다는 거야. 그는 한 번도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검토해본 일이 없어. 날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거든. 그는 단 한 번도 자기의 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해본 적이 없고 자기와 자기 신의 관계가 스스로 믿은 것처럼 과연 그렇게 사이좋은 것인지 단 한 번 의심해본 일도 없었어.” 그는 돌아서더니 무너진 교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것이 그의 세계였어.” (pp.96-97)
-- 그날 밤, 그 열두 명에게는 최후의 날이었던 밤, 우리는 대동강 상류의 어떤 언덕으로 끌려갔소. 모두들 총살당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소. 1분간 하고 싶은 기도를 하라더군요. “난 기도할 수 없어!” ― 이것이 당신 아버님의 마지막 말이었소. 그 최후의 말을 나는 그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를 기억하며 당신에게 전해주는 바이오. 아버님은 기도하지 않은 채 절대 고독 속에 돌아가신 것이오. (p.170)
-- 그는 지쳤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 대위, 자네가 이 임무를 맡게 되면 어떤 일을 떠안게 되는지 알고 있나? … 내 존경하는 교수, 그건 말야, 강연이다 연설이다 하면서 오만 가지 고상한 도덕 강의에 불려나가는 것일세. 선전이라 해도 좋지, 자네가 원한다면. … 우리가 이 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독립과 자유, 그 영광스런 대의명분을 위해서이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우리의 민주주의 정부체제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 이런 따위의 얘기를 떠들고 선전해대는 일을 해낼 수 있겠어? 늙은 아낙들과 가정주부들을 모아놓고, 혹은 남쪽 사정을 알고 싶어 안달하는 이곳 어린 학생들 앞에서, 그래, 우리가 싸우는 이 전쟁은 고귀한 전쟁이기 때문에 당신들의 고난은 그만큼 값진 것이다, 그러니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 의무를 다해서 자유로운 사회 정치 경제 생활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자면 많은 목숨이 희생될 것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희생이 불가피할 것이다 ― 이런 얘길 해줄 자신이 있느냔 말일세. …
아니면, 이 전쟁 역시도 바보 같은 인간들의 똥냄새 풍기는 역사 속의 다른 모든 전쟁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이 전쟁도 짐승 같은 국가들과 썩은 정치인들 사이의 눈먼 권력 투쟁이 빚어낸 구역질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 이렇게 말할 참인가? 이 어리석은 전쟁을 하느라 수많은 사람이 이미 죽었고 앞으로 더 죽을 것이지만 그들의 죽음은 정말이지 개죽음이다, 그들은 무고한 제물로 희생된 것이며 냉혹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국제 정치 무대에 꼼짝없이 붙들린 죄 없는 볼모들이다 ― 이렇게 떠들 작정인가?“ (pp.173-174)
-- “이봐, 난 자네도 그 누구도 경멸하지 않아! 내가 경멸하는 건 자네들의 그 행동이야! …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걸 주었다고? 하지만 왜 그 사람들을 속여야 하나? 이미 수없이 속고 속아온 사람들을 무엇 때문에 또 속이는 거야? 그들의 비참한 생에 어쩌자고 거짓말까지 보태는 거냔 말야? …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야.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이야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네들은 그걸 줘야 하는 거야. … 난 지쳤어. 이 모든 가식, 이 모든 고상한 거짓말,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해 저질러지는 이 모든 것이 이젠 역겨워 견딜 수 없어. 그래 그동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난에 시달리고 여전히 죽어가란 말이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속고 기만당한 채?” (pp.212-213)
-- “야, 여긴 정말 대단한 호강이지! 이제 환자들이 수백 명씩 몰려들겠지만 그들은 운이 좋았어! 수용할 장소가 있으니. 하지만 이리로 쏟아져 내려올 피난민들은 모두 어떡한다? 생각조차 하기 싫구먼. 그들이 이 추위에 가긴 어딜 가며 먹긴 무얼 먹겠소?” 그는 이 대목에서 잠깐 말을 멈추었고, 나는 그의 눈 속에 고통이 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피난민들은 줄곧 우리만 따라오는데 우리 철수 속도가 좀 빨라야 그들이 따라올 게 아니오. 이게 정말 무슨 놈의 장난인지, 원!”
그는 일어섰다. “난 늘 스스로 타일러요. 입 닥치고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인명을 구할 일이나 생각하라고 말이오. 그러나 난 6월의 그 아침을 잊을 수가 없거든. 글쎄 아침에 일어나보니 군대는 밤사이 몽땅 서울을 빠져나가고, 하나뿐인 한강 다리는 폭파됐거든. 서울 시민들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이 말야.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 그래 어떻게 생각하시오? 군은 절대로 서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 해서 과연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수천 명의 붉은 군대와 소련제 탱크가 거리로 밀려들고 있지 않겠소? 한데 그 믿을 만한 우리 국군은 어디로 갔는고 하니 벌써 남쪽으로 내려가도 한참 내려가 있더란 말씀야. 밤중에 도둑놈처럼 빠져나가서 말이지. 앞이 캄캄합디다.
… 그래 이 추위에 쫄쫄 주린 배를 싸안고 우리를 따라나서는 그 많은 피난민들에게는 왜 최소한 무슨 대책도 하나 못 세워주나 그거요. 여기가 또 서울의 재판이 되지 않길 난 진심으로 바라고 있소.” 나는 그가 우려하고 있는 사태가 곧 벌어질 것이라 경고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지 않으면 안 되었다. (pp.240-241)
-- “내 아내가 독실한 신자였소. 한데…… 참 이상한 일이지. 집사람이 살았을 땐 난 그의 신앙심을 그냥 그런가보다 여겼을 뿐, 신에 대한 그 사람의 유대감 같은 건 잘 이해하지 못했었소. 그런데 요즘 와서 막연하게나마 그걸 좀 이해하기 시작했단 말이오.”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는 걸 보아왔기 때문일까요?” “내 직업이 직업이라 사람 죽는 거야 숱해 보았지. 의사로서 난 내 환자들이 왜 죽는가를 설명할 수 있소. 하지만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는 건 나로서 도저히 설명이 안 돼. 그 문제의 밑바닥에 도달하면 도저히 합리적 설명이 나오질 않아요. 아무 뜻도 의미도 없거든. 그러나 그 죽음이 무언가 뜻을 가지긴 가져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부인을 이해하게 된 거군요?”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 ― 종교를 갖고 신을 가져야 하는 절실한 필요성을 이해하게 된 거지.” (p.259)
-- “어젯밤 피난민들을 보니 지난번 내가 진남포에 갔을 때 만난 그쪽 마을 사람들 생각이 납디다. … 거기서 내 친구 목사를 만나고 그곳 교인들과 함께 며칠 지내는 동안 나는 절망이 어떻게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삶의 어둔 감옥으로 던져 넣고 있는지를 보았소. 마을은 폭격과 포격을 당하고 석 달 사이에 두 번이나 털려 모두 알거지가 돼 있었소. 젊은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 죽고 딸, 누이, 아내 어미 할 것 없이 여자들은 죄 강간당하고 먹을 건 없고 병자가 생겨도 돌봐줄 길이 없었소. 지옥이 따로 없었다오.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그렇소, 당신이 환상이라 부른 그 영원한 희망 말이오.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 (하긴 이게 사실이지만)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 그래서 난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던 겁니다.“ (pp.271-272)
-- 상사가 떠난 뒤 나는 소령에게 말했다. “자, 소령님, 품위는 충분히 지켰으니 이제 가십시다.” “좋소, 나도 그럴 생각이오. 한데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편지를 한 장 써놓고 가야겠소.” 나는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저쪽 편 군의관에게 쪽지를 하나 남겨두고 싶소. 그가 중국인이건 북한 의사건 소련인이건 상관없소. 그가 진짜 의사라면 내 편지를 읽고 심정을 이해할 거요. 난 저 중환자들에 관한 의료기록과 남겨둘 만한 치료약은 모두 남겨두었소.” 그는 자기 환자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p.288)
p.s 특히 개인적으론 후반부 평양 퇴각 즈음에 등장한 군의관인 '민 소령'이란 인물이 아른거린다.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그 식의 정의는 뭉클하게 울리는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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