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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by 디어샬럿 2015. 8. 28.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보이곤 했다. …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 말을 위트에게 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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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유력 후보군이었지만 우선순위에선 하루키나 시옹오, 오츠 등에 다소 밀렸던 지라 꽤 의외라는 평가를 들은 수상자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쏟아진 그의 책들 중 집어든 것이었다. 글쎄, 아주 훌륭하달 수는 없지만 어쨌든 두 번은 읽게 만드는 책이다. 잉크가 유독 옅게 박힌 지면들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든 인상을 남겼다. 보나마나 급히 찍어낸 탓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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