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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by 디어샬럿 2015. 7. 19.

 

 

 

 

--  "에른스트. 광신이라는 것이 때로는 개인의 이익과 일치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엘리자베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일치하는 때가 많아. 그런데도 그 점을 늘 잊고 있다는 게 정말 이상해! 일단 한번 익히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게 되면 그게 바로 상투적인 게 된다는 거지. 이 세상은 원래 라벨이 붙어 구분되어 있던 건 아니야. 인간도 물론 그렇지 않고. 아마 그 독사 같은 여자도 자기 아이나 남편, 꽃이나 귀중한 건 모두 사랑할 거야.” (pp.190-191)

 

 

 

--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답을 구하는 것은 결정을 회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도 선생님께 실제로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자신을 향해서 물어본 것이지요. 종종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p.251)

 

 

 

--  “인간이란 동시에 그런 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으십니까?” 그래버가 물었다.

 

  “자네는 믿는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유부단하거나 근심 걱정이 많거나 마음이 약해서 협조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격대 대장까지 될 수 있을까?”

 

  “그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요제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상한 일이야. 사람들은 종종 살인자는 어디서나 언제나 살인자이고 그 밖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실제로는 자기 존재의 좁다란 일부분만 동원해도 끔찍한 불행을 퍼뜨릴 수 있는 거라네,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하이에나는 언제나 하이에나지요. 하지만 인간은 더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버가 대답했다.

 

  요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단 수용소 대장들 중에 유머를 갖춘 사람도 있고, 또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지애를 갖춘 친위대원도 있어. 그리고 애써 세상의 선한 면만을 보면서 끔찍한 일에는 눈을 감아 버리거나 그것을 일시적이거나 엄혹한 필연으로 여겨 버리는 동시대인들도 얼마든지 있어. 그들은 말하자면 탄력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지.” (pp.423-424)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사랑할 때와 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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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마르크라는 작가를 몰랐던 시절이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도 봤지만 개인적으로 큰 감흥은 없었던 지라, 영화의 원작자라는 무게도 내겐 크게 권위로 다가오지 않았을 적이다. 반은 속는 셈 치자며 읽었던 작품. 그러나 어느덧 내 인생의 소설이 됐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레마르크 소설은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한시도 손을 뗄 수 없었던 긴장감과 호흡으로까지 느껴진 듯 하던 칙칙한 시대감, 묵직하게 다가오던 회의감에 묘하게 가미된 뭉근한 휴머니즘까지. 어느 것 하나 감동스럽지 않은 게 없다. 읽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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