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편린 사이/책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by 디어샬럿 2015. 7. 19.

 

 

 

 

  역사가 아직은 느리게 나아가던 시절에는 그다지 많지 않은 사건들이 쉽게 기억 속에 새겨졌고, 누구나 아는 배경을 이루었으며, 그 배경 앞에서 개인사가 모험들로 가득한 매혹적인 공연을 펼쳤다. 오늘날, 시간은 성큼성큼 나아간다. 역사적 사건은 하룻밤이면 잊히고 말아 다음 날이면 이미 새로운 날의 이슬로 반짝인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은 이제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개인사의 너무나 친숙하고 진부한 배경 위로 펼쳐지는 놀라운 모험이 되었다.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p.20)

 

 

 

--  철학자 헤겔이 주장했듯,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선진 경제에서 이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뉴스 타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교회의 시간 규범을 따른다. 아침기도는 간략한 아침 뉴스로, 저녁기도는 저녁 종합 뉴스로 바뀌어왔다. 그러나 뉴스가 그저 유사 종교적인 시간표를 따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뉴스는 우리가 한때 신앙심을 품었을 때와 똑같은 공손한 마음을 간직하고 접근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 역시 뉴스에서 계시를 얻기 바란다. 누가 착하고 누가 악인인지 알기를 바라고, 고통을 헤아려볼 수 있기를 바라며, 존재의 이치가 펼쳐지는 광경을 이해하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 의식에 참여하길 거부하는 경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p.11)

 

 

--  한때 종교가 가졌던 것과 동일한 특권적 지위를 이제 뉴스가 점유하고 있다는 헤겔의 주장은, 뉴스와 종교가 각기 관장하는 지식 영역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 뉴스와 마찬가지로 종교는 우리에게 날마다 중요한 일들을 말해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뉴스와 달리 종교는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한꺼번에 해버리면 우리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따라서 종교는 자기가 준비한 상차림을 날마다 조금씩 떠먹여주는 데 신경을 쓰면서 끈기 있게 몇몇 주제를 습득하도록 한 뒤 계속해서 그 주제로 돌아간다. 반복과 연습은 주요 신앙의 교육법에서 핵심을 이룬다. (pp.35~36)

 

 

--  어떤 의미에서 계몽주의의 위대한 목표는 성취되었다. 이제 평균적인 시민들은 지구상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훨씬 놀라운 사실을 어쩔 수 없이 확인하게 된다. 아무도 그 사건들에 딱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 시청자들과 독자들이 외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진짜 이유가 특별히 얄팍하거나 천박해서가 아니고, 사건 자체가 지루해서도 아니고, 다만 뉴스가 충분히 호소력 있는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면 어쩔 것인가? 우리가 해외 뉴스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 세상을 담아내는 방법에 있어 언론이 잘못된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면? (pp.93~94)

 

 

--  시간은, 위태롭고 감질나지만 빠르게 저 위를 향해 궤적을 그리는 화살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근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바퀴라고 생각했다. 삶에는 피할 수 없는 주기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진실들은 되풀이해 발생했다. 그 주기는 피할 수도 부숴버릴 수도 없었다. 정기적으로 뉴스를 접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했었지만, 심리적으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시간을 화살보다는 바퀴로 간주하는 사회는 15분마다 기사를 검색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p.252)

 

 

--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괜찮은 어른으로서의 삶, 다시 말해 늘 양심적이면서도 자의식을 잃지 않고 안전한 삶, 공적 책임과 사적 책임을 균형 있게 이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를 보조하는 모든 지식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지식 중 어떤 것들은 첫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뉴스를 편성하는 책임을 지게 되면 우리의 발전에 무척 중요한 정보를 내쳐버릴 위험성이 있다. ‘맞춤 뉴스’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개성을 도야하는 걸 돕기는커녕 우리의 병적인 측면만 강화하거나 우리를 평범함이라는 형벌에 처하도록 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p.278)

 

 

 

-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

 

 

 

  신간으로 출간되자마자 읽었던 책이다. 한창 여기저기서 따끈따끈 언급되며 '화제의 신간' 특유의 온도를 지니고 있던 기억이 난다. 보통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조차도 읽고 넘어가야겠단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때도 하필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을 겸독하던 즈음이었다. 공교롭게도 겹치는 메시지가 많아 흥미롭게 되새긴 내용들. 이 책으로 보통의 글에 꽤 구미가 당겼던 듯도 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