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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

<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by 디어샬럿 2015. 7. 18.

 

 

 

--  비교를 통해 나 자신을 설명해 보겠다. 교향곡은 음악의 서사시다. 교향곡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질러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인도하며 점점 더 멀어지는 여행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주 또한 여행이다. 그런데 이 여행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인간은 거대한 무한의 심연과 작은 무한의 심연 사이에서 산다고 말한 파스칼의 생각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 변주의 여행은 이 다른 무한 속으로, 다시 말해 모든 것 속에 감춰진 내면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 속으로 나아간다.

 

  … 변주라는 형식은 집중이 극대로 발휘된 형식이다. 이 형식은 작곡가에게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게 하고 사물의 핵심에 곧장 다가가게 한다. … 변주가 거듭될 때마다 베토벤은 점점 더 원래 테마로부터 멀어져서 원래 테마는 마지막 변주곡과 전혀 닮지 않게 된다. 꽃이 현미경으로 본 꽃의 모습과 닮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 외부 세계의 무한이 우리를 벗어났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른 무한을 놓쳤을 경우에는 죽도록 자책한다.

 

  우리가 사랑한 존재를 놓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던 베토벤이 원숙기에 이르러 가장 좋아한 형식이 변주였다는 것, 그 16박자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면 세계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pp.307-309)

 

 

 

--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내게 들려준 얘기가 있다. 음악의 모든 조성(調性)은 작은 궁정이다. 그곳에서는 왕이 권력을 행사하고(으뜸음), 시종 두 명을 거느린다(다섯 번째 음과 네 번째 음). 그들은 그들의 지휘 아래 다시 다른 고관을 네 명 뒀는데 그 각각은 왕과 시종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다. 게다가 그 궁정에는 우리가 반음계라고 부르는 다른 다섯 음도 묵고 있다. 그것들은 분명히 다른 조성에서는 맨 앞자리를 차지하겠지만 그곳에는 손님으로 왔을 뿐이다.

 

  열두 음 각각에는 고유한 자리와 직책과 기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듣는 작품은 음들의 모임 그 이상이다. 작품은 우리 앞에 하나의 행위를 펼친다. 때로 사건들은 끔찍이도 뒤죽박죽이고(예를 들어 말러나 바르토크나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처럼.) 여러 궁정 왕자들이 개입하여 돌연 우리는 어느 음이 어느 왕실을 위해 봉사하는지 혹은 여러 왕을 위해 봉사하는 건 아닌지 알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가장 순진한 청중은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음악은 아무리 복잡해도 언제나 같은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내게 말했던 얘기고 다음은 나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 위대한 사람이 천 년이면 음악의 언어가 고갈되어버려 앞으로는 계속해서 같은 것만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혁신적인 법령을 통해 그는 음의 수직 체계를 무너뜨려서 모두 똑같이 만들었다. 그는 음들을 엄격한 규율을 적용해서 어떤 음도 다른 것보다 악보에 자주 등장하지 않게 하고, 그렇게 해서 옛 봉건적 특권을 갖지 못하게 했다. 왕실은 완전히 무너졌고 12음 음악이라고 불리는, 평등 위에 토대를 둔 유일한 제국으로 대체되었다.

 

  음악의 울림은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흥미로워졌는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천 년 동안 궁정에서 전개되는 스토리 속 조(調)를 따라가는 데 길들어 음 하나만을 듣고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12음 음악의 제국은 금세 사라졌다. 쇤베르크 이후에 바레즈가 나왔고, 그는 조성뿐만 아니라 음까지도 파괴해 소리의 정묘한 구성으로 대체해 버렸는데, 그것은 매혹적이긴 하지만 이미 다른 원칙들과 다른 언어에 토대를 둔 다른 무언가의 역사를 여는 일이었다. (pp.334-335)

 

 

 

--  음악의 역사가 끝난 것이 사실이라면 음악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침묵?

 

  그럴 리가! 음악은 점점 더 늘어났다.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에 있었던 것보다 수십, 수백 배가 늘어났다. … 쇤베르크도 죽었고 엘링턴도 죽었지만 기타는 영원하다. 틀에 박힌 하모니, 흔한 멜로디, 가슴을 에는 만큼 단조로운 리듬, 이것이 음악으로부터 남은 것이다. 이것이 음악의 영원성이다. 음들의 이 단순한 조합 위에서 온 세계는 형제가 될 수 있다. 그 조합 안에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환희에 찬 외침을 내지르는 건 바로 존재 자체이기 때문이다. 존재와의 단순한 동감보다 더 떠들썩하고 만장일치의 동의는 없다. (p.338)

 

 

 

 

-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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