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친구와 술이 몹시 취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친구 주정 삼아 저더러 왜 요즘 글을 잘 쓰지 않느냐 시빌 걸어오더군요. 전 그저 평소 느낌대로 글이 잘 씌어지지 않아 그런다 했더니, 그 친구 대뜸 저더러 그새 겉늙은이가 다 됐다고, 겉늙은이처럼 고고한 소리 말라고 다시 시비예요. 공연히 세상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우리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개인의 삶인데 쓸데없이 너무 세상사에 휩쓸려 같잖은 소명감이나 비분강개 속에 자기 인생까지 허망하게 늙혀버리지 말라구요. 그러면서 그는 아주 의기양양했어요. 자기에겐 이 세상이라는 게 뜻밖에 수월하더라구요. 세상살이는 그저 쉽게 쉽게 살아 넘어가야 한다구요.
전 그 친구에게 짐짓 한번 대들어 봤지요. 세상의 힘들고 어려운 구석은 늘 외면하고 피해 살려는 너야말로 정말로 겉늙은 게 아니냐, 그런 인생에 무슨 성취나 보람이 있겠느냐― 했더니 이 친구 온갖 인생사나 세상사를 그런 식으로 늘 부질없이 데데하게 생각하려 드니까 제겐 그게 자꾸 더 어렵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동정이지 뭡니까. 저 같은 소설쟁이들은 사람들에게 자꾸 그 어두운 곳, 힘들고 어려운 곳들만 들춰내 보여주는 달갑잖은 심술꾸러기일 뿐이라구요. 그런 소설쟁이들, 자기에겐 차라리 백해무익한 존재랍니다.
어쨌거나 전 그날 제가 신봉해온 소설적 질서가, 그 화법이 얼마나 낡고 퇴화해가고 있는가, 그래 이 시대로부터 얼마나 천덕꾸러기로 버림을 받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세상과 우리 삶을 향해 지니고 있는 말의 양, 그 말들의 충동에 비해, 소설이라는 화법은 이미 그것을 감당하기에 너무 무기력할뿐더러 오히려 거추장스런 형식으로 전락해버린 거죠. 소설로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다는, 그럴 수 있었던 시대의 소설에 대해 제가 터무니없이 너무 오랜 향수를 지녀온 것 같았어요. 어쩌면 그 자기 속임수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낡은 소설의 향수 속에 전 정말 어림없는 백일몽을 꾸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문제는 제겐 아직도 우리 삶과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니 그걸 말하기 위해서는 이젠 무엇보다 그 소설이라는 비능률적이고 거추장스런 화법을 단념해버려야 할 것처럼 생각되더군요. … 저와 그 친구 사이엔 이미 그런 정도의 말조차 서로 통할 수 없었던 것 아닙니까. 절망이죠. 그런 시대에 소설이 다 뭡니까. (pp.283~284)
- 이청준, <목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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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이청준 만한 작가가 있을까. 시대를 꿰뚫는 통찰,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 축조한 세계를 과감히 무너뜨릴 줄 아는 시도...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혹은 '존경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목표가 있다면, 언젠가는 이청준 전집을 손에 넣고야 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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