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 다른 노래. 비틀즈의 Tomorrow Never Knows를 듣다 불현듯 생각났다. 타이틀만 같을 뿐이지, 가능성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전혀 다른 곡이다. 원 타이틀의 곡은 비틀즈의 1966년작 Revolver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비틀즈의 전-후기를 나누는 주요한 곡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이 곡을 쓸 무렵의 존 레논은 한창 LSD에 빠져 있었다. 그때의 환각 경험이 철학적으로 여과 없이 담긴 게 바로 이 노래. 요즘은 마약으로 분류된 지 오래지만, LSD는 1940~50년대까지만 해도 정신병리학에서 치료 목적으로 환자에게 투입한 사례가 있었다고. 특히 60년대엔 인간 내면의 잠재의식을 일깨우는 '마법의 약'이라 하여 지식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유통됐다 한다. 이론적으로 이를 증명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었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티모시 리어리가 대표적인데,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이 약을 통해 우리는 니르바나(열반)에 이르는 오만 가지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LSD 체험으로 자아 파괴 및 절대 명상에 이를 수 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LSD의 강력한 환각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티벳 고대 경전까지 인용한 이 논문은 한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환각 체험'에 누구보다도 심취한 이가 바로 존이었다. 실제로 이 곡은 몽환적인 음조와 애매한 메시지로 가득하다.
존 본인이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환각이 어그러진 문법 속에서 증발돼 버릴 듯한 가사로 위태롭게, 혹은 초연하게 담겨있다. 탈자아와 객관화, 색즉시공과 니르바나(라 주장하는), 시작과 끝은 결국 한 점이라는 단편적으론 쉬이 이해할 수 없는 꽤 심오한 생각들이 응축돼 있다. 사운드와 멜로디는 또 어떤지. 경쾌한 드럼과 갈매기 울음소리, 고즈넉하면서도 기묘하게 불안한 시타음이 차례로 이어지다 제멋대로 뒤틀린 후, 일순간 고요로 돌아간다. 변화무쌍한 베이스 사운드 위에서 테이프 루핑(테이프의 앞과 뒤를 이어붙여 같은 부분이 끊임없이 반복되도록 한 기법)으로 동일하게 진행되는 멜로디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순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힌두 철학에 심취한 조지 해리슨은 이를 윤회사상에 빗대기도 했다. 삶과 죽음, 무와 유,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끊임없는 흐름을 그려내고 싶었다는 것.
녹록지만은 않은 노래다. 비틀즈 곡 중에서도 대중적이고 달콤한 발라드록에 익숙하다면 더욱. 그러나 진짜 비틀즈를 접하기엔 꽤나 좋은 곡이란 생각이 든다. 이 곡에서 시도된 각종 이색적인 사운드들이, 이후 후기 비틀즈의 독보적이고 고유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크게 일조했다. 처음엔 상당히 당황스럽지만 듣다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넘버. 그러고 보니 비틀즈 팬 중에서 이 곡 싫어하는 사람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미스터칠드런의 경우, 제목만 빌린 전혀 다른 곡이라 봐야 한다. 원 타이틀의 다소 난해한 곡조를 떠올릴 수조차 없게 하는, 전형적인 '노래'의 멜로디를 담고 있다. 정제된 사운드, 희망 가득한 가사의 한없이 모범적인 노래― 같은 제목에서 이토록 다른 음악이 나와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다. 1994년에 발표됐으니 비틀즈의 그것과는 30년 남짓의 시간차가 있다. 이 노래로 미스치루는 일본 국민밴드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아마도 비틀즈 곡 중에서도 메인급은 아니다 보니, 일본 내에서 이 노래가 큰 인기를 끌었을 때도 비틀즈와의 연관성은 크게 회자되지 않은 듯하다. 사실 연관성을 찾는단 것 자체가 어딘지 기이할 정도로 같은 구석이 없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후일담을 찾아보니 비틀즈의 동명곡에서 타이틀을 차용한 건 맞다고 나오네. 하지만 워낙에 다른 곡이라 오마주라 칭하긴 무리가 있어보인다.
사쿠라이 카즈토시의 담담하면서도 긍정적인 가사가 꽤 괜찮다. 링고스타 특유의 언어유희식 원제를 '내일이란 아무도 모른다'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써내려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리라는 일본식 '간바레'풍이 음악 전반에 짙게 깔려있다. 신디사이저와 피아노 주선율에 기타와 드럼이 조금씩 합쳐져 소리가 꽉 차게 되는 과정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심지어는 꽤 감동적인 기분마저 든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을 향해서일지언정 손을 내밀어보자. 지워지지 않을 상처라면 차라리 끝까지 끌어안고― 조금 어긋나도 괜찮으니 꿈을 그리자. 누군가를 위해서 산다 해도 Tomorrow never knows(내일이란 모르는 것).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겠어, 누구도 모르는 내일로."
말끔하니 젊디젊은 초창기 사쿠라이 카즈토시. 어울리지도 않는 고독한 남자 컨셉 하시느라 수고가 많았수, 라고 젊은 카즈토시의 어깨라도 두드려주고픈 뮤직비디오. 저 시기엔 한국이고 일본이고 고독 컨셉이 대유행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도 어느덧 마흔 중반이겠구나. 이 때 목소리가 참 좋았는데. 깊이 차치하고 힘내고 싶을 때 어울리는 노래. 왠지 일본 청춘영화 주인공처럼 머리에 하얀띠 두르고 주먹 꽉 쥐고서 기합 넣고 뛰어줘야 할 것 같다. 알록달록하니 듣는 맛도 있고. 한때 미스터칠드런 노래도 참 열심히 들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여전히 좋기도 하여라.
(2014.07.05)
'평론과 편린 사이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RIP, Maestro. (0) | 2014.07.24 |
---|---|
관록의 발라드 (0) | 2014.07.24 |
기분 좋은 생경함 (0) | 2014.07.24 |
Will you be there? (0) | 2014.07.24 |
열일곱의 위안 (0) | 2014.07.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