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더니, 눈치채지 못하는 새 비다. 놓쳤던 지난 2주분 푸른밤을 '경건히' 영접하기 위해 튠인라디오를 켰다. 마이클잭슨 특집이었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노래들이 지난 전파를 타고 물길처럼 흘러들었다. 가슴을 적신다는 게 이런 걸까. 새삼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익히 알지만 또 들어도 좋은 비화들, 가슴 한켠이 저릿해지는 일화들, 하나하나 공감 가는 사연들. 얼마만에 접해보는 보드라운 이야기들인지. 나는 온전히 라디오에 녹아들었다. 그의 음악은 참으로 다양한 인생들의 단면을 채우고 있었다. 추억들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어느덧 그가 이곳을 떠난 지도 5년째. 사람들은 그립고 때로는 슬프다. 이따금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드는 그의 빈자리를 느끼며,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누구나의 이런저런 장면들 속에서 고이 숨 쉬고 있는 불멸의 존재.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이클잭슨과 진지하게 마주한 때가 언제였던지...
열일곱은 최악이었다. 그 나이라면 누구나 시끄러운 속을 안고 살았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는 유독 힘들었다. 모든 것이 힘에 부쳤고 아무 것도 꿈꿀 수 없었다. 음악만이 낙이었다. 오며가며 버스 안에서 1시간 남짓 듣는 노래들만이, 그 시절 유일하게 내가 설레던 것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한창 팝을 듣고 있었다. 중학교 때 열심히 들은 백스트릿 보이즈가 그만 질려버릴 즈음이었다. 음반매장에서 별 생각없이 집어든 게 하필 마이클잭슨의 Off The Wall 앨범이었다. 벽돌담을 배경으로 선 까만 정장 바지에, 눈부시다는 말이 딱 어울리게 빛나는 하얀 양말의 심플한 조화. 얼굴도 없는 하반신 컷이 어딘지 패기로웠다. 딱히 그를 잘 알아서 혹은 좋아해서도 아니었건만, 차비만으로도 빠듯했던 용돈으로 5500원짜리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기억에 이 앨범이 딱 하나 남아있었다. 사후 그나마 물량이 풀린 편인 지금도 오프더월은 구하기가 꾀까다로운 편인데, 그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터다. 물론 내가 구입한 건 ―그리고 그 이후에 산 CD도― 2001년에 리마스터링된 버전. 1979년에 발매된 원판, 특히 청년 마이클이 이를 활짝 드러내 놓고 웃고 있는 상반신 컷 초회판은 중고시장에서 웃돈을 주고야 구할 수 있다는 걸 안 건 훨씬 뒤의 일이다.
별 지식도 애정도 없이 고른 것에 비하면 언제 어디서건 참으로 충실하게 들었다. 사실 지금 와서 보면, 아주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데뷔 앨범은 데뷔 앨범이다. 갓 스물을 넘긴 마이클이 성인솔로로 처음 출격해 낸 앨범이니 사실상의 첫 앨범인 셈. 이후 작품들에서부터 발현된 마이클잭슨 특유의 빈틈없고 세련된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긴 하다. 아무래도 이후 3연작(Thriller-Bad-Dangerous)에 비해 평단이나 팬의 주목도는 덜하기 마련. 그러나 이 앨범 역시 극도로 정제된 세련미 넘치는 디스코 사운드에, 특유의 펑키한 리듬감을 최상의 상태로 구현한 수작임엔 틀림없다.
물론 이런 걸 알 턱 없이 그의 음악을 처음 접했던 내겐 그저 좋은 앨범이었다. 그때까지 막연하게만 들어왔던 마이클잭슨의 명성과 음악의 진가를 깨닫기에 더없이 충분했다. 마이클잭슨은 이렇게 좋은 음악을 하는구나. 조용한 감탄을 연발하게 하는 노래들이었다. Get On The Floor의 흥겨운 단조풍 박자에 흠뻑 취하고 나면, "또각" 하는 카세트테이프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잠깐의 침묵 뒤에 찾아오던 Off The Wall 도입부의 기억- 하나같이 꿈결 같고 보드랍고 포근했던 음률, 변성기를 갓 지나 아직은 내지를 줄 몰랐던 유한 음색의 달콤한 조화. 그때의 나는 이 앨범에 정말로 많이 의지했다.
가장 좋아한 건 Rock With You와 이 곡 I Can't Help It이었다. Rock With You야 워낙 유명해서 다들 좋아하지만, I Can't Help It을 넘버원으로 꼽는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론 Don't Stop 'Til You Get Enough라든지 Off The Wall 같은 타이틀급보다 더 아끼는 곡이다. 8번 트랙이었던가. B면에 있어 대개는 하굣길에 이르러 들었다. 스티비원더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너울 타듯 등장하는 장단조의 교차 속에 영롱하면서도 농밀한 멜로디가 무르익어가는 진행이 일품. 지상의 숨결이 닿지 않는 까마득히 높은 밤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늦은 수업이 끝나고 어스름 해가 질 무렵, 유난히 느렸던 해운대행 차창 밖으로 익숙한 우리 동네 풍경이 하나둘 드러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귓전을 울리던-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까맣게 물든 길에서 '오늘도 견뎠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던 그때가 떠오른다. 정말로 힘겨웠지만, 별 거 아닌 걸로도 모든 것이 위안이었던 시절.
Looking in my mirror, took me by surprise
I can't help but see you
running often through my mind
Helpless like a baby, sensual disguise
I can't help but love you
It's getting better all the time
**
I can't help it if I wanted to
I wouldn't help it even if I could
I can't help it if I wanted to
I wouldn't help it, no
**
-
Love to run my fingers, softly while you sigh
Love came and possessed you
bringing sparkles to your eyes
Like a trip to heaven, heaven is the prize
I'm so glad I found you
You're an angel in disguise
**
...노래가 이렇게 달콤한데 어찌 빠지지 않고 배기겠냐구. I also can't help it !
(201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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