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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러시아식 서정, 리히터의 '이 한 장의 음반'

by 디어샬럿 2015. 1. 16.

 

 

  어느 때건 유난히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봄에는 비발디를 찾게 되고 가을이면 브람스가 그리운 것처럼. 겨울, 특히 이 무렵은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계절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알알한 연횟빛 겨울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생각이 난다. 일상의 틈으로 옛 러시아 작곡가들의 멜로디가 예고 없이 흘러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창창한 날조차도 씁쓸한 쓸쓸함이 맴도는 이맘때의 대기 같다고 할까. 낭만파의 마지막 수호자 내지는 최후의 낭만의 기수라 불리는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이들의 음악은 화려하면서도 투박하고 섬세하면서도 둔중하다. 그 미묘하고도 야릇한 낭만으로 건조한 날들을 축이는 게, 요즘의 작은 사치다.

 

 

 

 

  리히터의 차이코프스키-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시리즈는 여러모로 '단 한 장'의 가치가 있다. 겨울의 서정을 떠올리기도 제격이거니와, 차이코프스키 혹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도 더없이 훌륭한 음반이다. 클래식 초심자의 입문용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역량을 고스란히 담은 수작이라 해도 과찬이 아니다. 일찍이 고 안동림 교수가 저서 <이 한 장의 명반>에서 이 음반을 두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음반의 질은 이미 증명된 셈이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1959년,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은 1963년에 녹음됐다. 리히터 개인 음반으로도 수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리히터가 오른쪽 15도 정도로 고개를 갸울인 예의 자주색 그 음반은, 클래식 애호가라면 스치면서라도 한 번쯤은 봤을 만큼 대중적 명반 대열에 든다. 2001년 이후부터는 카라얀과의 모습을 담은 지금의 흑백 커버로 발매되고 있다. 카라얀이 표지 전면에 나선 탓에 두 곡 모두를 함께 녹음한 걸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카라얀과의 작업은 차이코프스키 1번, 빈 심포닉과의 녹음본 뿐. 라흐마니노프 2번은 비슬로츠키가 지휘를 맡은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했다.

 

  육중하리만치 강렬한 소리로 라흐마니노프 2번이 시작된다. 동시에 음반의 서막도 열린다.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이 엄청난 소리를 듣노라면, 무려 차이코프스키 1번을 밀어내고 왜 이 곡이 전반부 트랙에 배치됐는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잔잔한 크레센도 후 음을 통째로 메치기라도 할 듯 무겁게 내리치는 피아노가 서두를 장식하면, 비장하게 흐르는 현악기의 음 너머 건반이 만들어내는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의 향연이 정신 없이 이어진다. 한 치의 흠도 없이 광활한 빙판을 딛는 듯한 고음부의 재현에 이르러선, 아름답다는 말로도 턱없이 부족한 음색과 선율에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곧 깨어질 것처럼 여리다가도 다시 강렬한 날로 에어오는 듯한 차갑고도 영롱한 음들. 그 변화무쌍한 모습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겨울의 공허함을 이토록 완벽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내는 음악이라니. 차가운 열정 혹은 뜨거운 냉정, 어느 쪽이든 이 오묘한 모순은 기이한 온도감을 빚어낸다. 아마도 이 지점이야말로 이 곡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할 터.

 

  리히터의 폭을 가늠할 수 없는 연주와 정확한 곡 해석, 섬세한 기교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미세한 음을 살려내며 피아노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비슬로츠키의 지휘가 협주 이상으로 어우러진다. 도입부가 조금 느릿한 감은 없잖지만 곡 전체의 진행이나 감정표현, 테크닉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굳이 말하자면 뭐랄까, 안정적인 연주다. 구조상 도입이 여유로워야 후반부에 이르러 속도에 쫓기는 느낌이 덜한 곡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코드의 교차가 잦고 기교가 화려해 그냥 쳐도 미스터치 없기가 어려운 걸, 완급 조절에 실패하면 뒤로 가서 곡이 통째로 무너져버린다. 이 곡의 명반이라 손꼽히는 연주 중 몇몇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을 정도. 듣는 것 이상으로 쉽지 않은 곡이지만 리히터의 명성 앞에선 그마저도 무색한 것 같다. 이외에도 반 클라이번의 RCA 녹음반, 아슈케나지, 호로비츠가 많이 추천된다. 비교하면서 듣는 재미도 있다.

 

 

 

 

  차이코프스키 1번은 잠깐의 정적 뒤에 찾아온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음이다. 승전보처럼 울리는 호른 소리와, 소리들의 미약한 여운을 깨질 듯 가르는 두터운 피아노의 화음부가 그것이다. 옥타브의 제약을 넘나드는 강렬한 피아노 선율에 힘입어 현악기의 서정적인 연주가 이어지고, 장조와 단조를 넘나드는 진행을 따라 비장과 환희도 여기저기서 부풀어 오른다. 3악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음의 구성이나 시간 배치를 보면 1악장에 중심이 실린 곡. 1악장 시간만 (연주자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22분에 달한다. 때문에 1악장에서는 1주제와 2주제가 교차와 융합을 반복하는 소나타 형식이 드러난다. 이 '비정상'적인 배치 때문에 당대 최고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겸 차이코프스키의 스승이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작품에 혹평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런 기이한 곡은 내 생애 처음이다, 그가 작품에 남긴 유일한 코멘트였다. 그만큼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서두부에 비하면 8~9분 이후의 진행은 어딘지 얌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특히 초중반 이후 카덴차가 유독 긴데다 다소 단조로운 편이다. 이 부분이 산만하게 들리지 않게 하는 건 순전히 연주자의 몫. 문제는 이 파트가 악장의 절반 이상에, 곡 전체로 봐도 1/4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웬만한 해석과 기교가 아니고서는 용두사미가 되기 쉬운 곡이다. 너무나 유명해져서 누구나 의례적으로 연주해야 하지만, 의외로 들을 만한 연주가 흔치는 않은 작품인 이유다.

 

  강렬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적재적소에 드러내는 연주여야만 한다. 곡이 드라마틱한 반면 연주는 절제돼야 한다. 리히터는 그 점에서 능히 훌륭하다. 하나 더 흥미로운 것은 카라얀과의 협주라는 점이다. 선율을 죄다 빨아당길 듯 강렬한 리히터의 타건과 약간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카라얀의 장중한 지휘. 이 불꽃 튀는 견제가 곡에 매력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 유명해 마지않은 1악장 외에도, 3악장이 이 연주의 백미다. 관능적일 만큼 유려하고 섬세한 리히터의 기교와 소리의 양감에, 이전까지의 고상함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거칠게 달려나가는 오케스트라의 야성미가 웅장함을 향해 치닫는다. 1악장 서두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음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다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제각각 도드라지며 뽐내던 소리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우르르 달려가는 느낌이랄까. 산발적인 일체감에 함께 마음이 들뜨다, 정적을 맞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명연을 찾기 가장 힘든 영상 중 하나가 라흐마니노프 2번이었다. 그러던 것이 모처럼 다시 들어가 보니 몇 달 전에 정명훈과 예브게니 키신이 협연한 버전이 올라와 있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특히 키신 연주가 꽤 성숙해졌다. 나이를 먹어설까. 1997년 BBC 교향악단과의 협주에선 다급한 천재 느낌이 났는데, 많이 여유로워지고 한결 편해졌다. 정명훈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도 괜찮고. 이래저래 말은 나와도 정명훈의 현악기 조율 능력은 단연 정상급이다. 연주는 2014년 9월자.

 

 

 

 

  카라얀과 키신이 함께 한 차이코프스키 1번. 1988년, 카라얀이 세상을 뜨기 1년 전 베를린 필과의 협연 영상이다. 냉정히 말하면 최상의 공연은 아니다. 이미 노구가 된 카라얀과 아직은 덜 영근 영재였던 키신. 확실히 어딘지 약간 어설프고 모자란 연주다. 실제로 중간중간 오케스트라 부에서는 불안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래도 당시 현존 최고의 지휘 수장과 관현악단,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 천재가 모였다는 상징성만으로도 가치를 갖는 연주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이 때의 키신 나이는 불과 17살... 괜히 신동 소리를 들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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