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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BAD,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by 디어샬럿 2015. 8. 30.

 

 

  끝인 듯 싶던 더위가 막바지 강짜를 부릴 즈음이었다. 요사이의 나는 온통 낯선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시간과 만남의 공백으로 비워두었던 온갖 것들을 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회는 끝도 없이 새로운 사건을 쏟아냈다. 여기저기서 토해내는 말들은 어찌 그리도 많은지.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다른 세계로 입성할 준비를 했다. 간신히 따라잡았다 싶으면 다음날 새로운 것이 또 머리를 드밀어대는 느낌이랄까. 익숙하디 익숙한 그의 음악을 위한 여유의 틈새 같은 건 신경쓸 겨를도 없는 일상이었다.

 

  어제는 오래토록 소식 몰랐던 소중한 이와 연락이 닿았다. 대학 내내 붙어다니던 일고여덟 명의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친했던 S. 그녀와는 정말로 대학 시절을 오롯이 함께 보냈다. 그러나 서로의 일상에 치이는 시기가 왔고, 이런저런 오해로 스치듯 마지막으로 본 지가 벌써 3년째다. 2년 전이었던가, 그녀가 보냈던 메일을 읽으며 펑펑 울었던 것이 그나마 인연의 끈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최근의 기억이었다. 잘 지내니, 생각나서 연락해본다. 오랜만에 보낸 문자에 S는 덤덤하게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 나도 너무 보고 싶었다, 우리 곧 보자. 단단하고 간단한 텍스트 사이로 속정이 무뚝무뚝 묻어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웬걸 코끝이 시큰해졌다. 곧 두 자릿수에 가까워지는 인연이지만 못 본 시간이 절반에 가까웠다. 여전할까, 건강할까. 생각의 틈으로 그녀와의 추억이 아른거렸다. 지난 기억은 여전히 온기를 품고 있었다. 시간을 돌이키는 사이, 나도 몰래 재생하게 있던 것이 그의 음악이었다.

 

 

 

 

  얘기하다보니 민망한 ―내지는 작위적이게 보일 수도 있을 법한― 우연의 일치지만, 어제는 이 이의 생일이기도 했다. 미리 눈치챘다면야 날짜에 딱 맞춰 뭐라도 썼을 텐데, 까맣게 잊고 있다 하루 지난 오늘 기사를 보고 알았다. 그래도 어제 내내 <BAD> 앨범을 들었으니 공교롭게도 나름의 도리는 했다(?)며 자찬하다, 이렇게 된 거 앨범에 대해 몇 자 보탬이나 해 보자 싶다. 여러모로 내게는 참 묘한 앨범이고 노래들이니.

 

  처음 이 음반을 산 게 열일곱 겨울이었던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 지방임에도 칼바람이 몰아치던 추운 날이었다. 고2 대비랍시고 시작된 방학 자율학습길을 오가며 들을 앨범을 찾던 터였나. 버스정류장과 가까웠던 음반매장에서 카세트테입을 샀다. 기대에 가슴이 다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1집은 물론이고 2집까지 두말할 것도 없이 좋았으니까. 그러나 처음 전곡 재생 후 머릿속에 떠다닌 건 절반의 느낌표, 절반의 물음표였다. 좋긴 한데, 어딘지 김이 빠졌고 왠지 심심했다. 이상스레 세련미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충격의 강도가 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대차에 기인하는 부분 같기도 하다. 90년대를 어린이와 학생의 경계로 보낸 내겐, 자연스레 들어온 그의 노래란 거의 <Dangerous>나 <History> 즈음의 수록곡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 앨범은 (나보다 앞선 세대의 이들에게야 다른 얘기겠지만) 어색하고, 그래선지 어정쩡했다. 귀에 익은 노랜 없지, 신디사이저가 덕지덕지 덧발린 사운드는 촌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가장 자주 재생하는 앨범 역시 <BAD>다. 노래들의 유기성이 뛰어나달까. 전곡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의문스런 'Dirty Diana'를 제외하곤 어느 것 하나 유별나게 튀는 곡도 없다. 그러면서도 흥겹고 박진감이 넘친다. 놀랍도록 적정선을 지키는 음과 비트의 긴장에서 이 앨범에 쏟아부은 노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 MJ표 주옥 같은 명곡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동명의 타이틀곡와 'The Way You Make Me Feel' 외에도 'Another Part of Me', 'Man In the Mirror', 'I Just Can't Stop Loving You' 그리고 'Smooth Criminal'까지 ― 자세히 보면 진짜 명곡은 이 앨범에 다 들어있구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한층 풍부해진 음감과 강렬해진 보컬은 어떻고. 게다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등장하며 MJ표 세계평화 발라드의 서막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이 앨범은 상징성이 크다. 프린스의 <Purple Rain>발 80년대 후반 특유의 사운드가 좀 아쉽긴 하지만... 어떤 예술이건 시대를 완벽히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유독 아쉬운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 사운드다. 사운드의 질이 아니라 종류의 문제. 신디사이저가 찍찍 찢어지는 듯한 '쌍팔년도' 메인사운드는, 30년 가까이 흐른 요사이에 듣기 다소 힘든 면이 있다. 문제는 타이틀 격의 곡들에서 이 사운드를 중용해주셨다는 것. 마이클잭슨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시대를 앞섰던 사운드인데, 이 평가가 머쓱해지는 유일한 앨범이 바로 <BAD>다. 개인적으론 전작 스릴러보다 사운드는 퇴보했다는 느낌마저 받았으니. 그래서 퀸시 존스와의 결별이야말로 MJ가 정말 잘 한 일 중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그와 손을 놓은 후 내놓은 댄져러스의 놀라운 사운드를 상기해보면 더욱!

 

  불멸의 역작 스릴러의 아성 후에 나온 탓에 당시에도 이 앨범은 기대에 못 미친단 평을 제법 들었다. 그러나 꾸준한 음반판매량으로 결국 MJ 3연작 반열에 당당히 올랐으니, 최후의 승자는 단연 <BAD>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마이클잭슨은 참으로 멋있었다. 전작보다 성숙은 무르익고 이후보다 젊은 열정이 흘러넘친다. 전성기 중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반짝이던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이란 이유만으로도 <BAD>는 가히 최고 반열에 오를 법하다. 나쁜 남자(Bad)임을 자처하지만 실은 굶주리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자 마음 먹는 거울 속의 남자(Man In the Mirror)였던,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착한 남자'였던 그를 추모하며.

 

 

 

Track 01. Bad

  이 노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뮤직비디오는 말이 필요없다. 뮤직비디오 덕분에 곡마저 좋아지는 대표적인 예시랄까. 스타일링도 군무도 연출도 입이 쩍 벌어지리만치 멋있다. 특히 춤... 이 시대에 어쩜 이렇게 세련된 동작과 동선을 다 고안해냈을까. 춤만 보고 있어도 넋 잃은 채 4분이 금방 간다. <좋은 친구들>의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하다.

 

 

 

Track 02. The Way You Make Me Feel

  뉴욕 할렘 가의 '섹시한 불량남자'(...)를 컨셉으로 한 뮤직비디오. 모티프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졌다. 한없이 껄렁해보여야 정상이거늘, MJ는 매력적이리만치 너무나 귀엽기만 하다. 한편 <웨스트...> 뮤지컬의 열렬한 팬이었던 MJ는 안무 곳곳에 이 뮤지컬의 동작을 차용하기도 했다.

 

 

 

Track 03. Speed Demon

  바이크 족을 연상케 하는 메인사운드가 재미있는 곡. 그닥 좋아하는 넘버는 아니지만, 기발함이 빛나는 뮤직비디오만은 단연 최고다. MJ 자신이 꾼 꿈을 그대로 콘티로 옮긴 것이라 한다. 요즘 봐도 어색하지 않은 CG가 말해주듯 제작비가 상당히 많이 들었다는 비화가...

 

 

 

Track 04. Liberian Girl

  곡 자체로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고대 이집트 혹은 중동의 사막 왕국을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당시의 헐리웃 유명인들이 죄다 카메오로 출연했다.

 

 

 

Track 05. Just Good Friends

  스티비 원더가 함께 녹음에 참여한 곡이다. 더없이 발랄한 멜로디지만 가사는 '여우 같은 그녀'를 앙큼하게 고발하는(?) 내용. 앨범 내에서는 Man In the Mirror와 함께 유일하게 마이클잭슨이 직접 작사작곡하지 않은 곡이기도 하다. 더불어 Speed Demon과 마찬가지로 싱글컷도 되지 않았다. 두 흑인 거장(!)의 밝고 미친(...) 고음의 향연을 즐겨보시라!

 

 

 

Track 06. Another Part of Me

  이 곡과 영상으론 언젠가 일상 포스팅으로 올린 적도 있지만 상관없다. 이건 두 번 봐야 돼 백 번 봐도 돼ㅠㅠ 팬들 사이에선 예전부터 소위 '입덕영상'으로도 유명했다. 1988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라이브 공연. 원곡보다 라이브가 더 멋있다. 참고로 이 곡과 함께 마지막까지 수록 넘버로 저울질됐다 탈락한 'Streetwalker'라는 곡은 <BAD 25th Anniversary Edition>에 실렸다.

 

 

Track 07. Man In the Mirror

  설명이 필요 없는 곡. 무조건 공연실황도 보고 라이브로 들어야 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Man In the Mirror를 주제로 포스팅한 적도 있지만, (또) 상관없다. 그때 미처 올리지 못했던 1992년 부카레스트 버전이니까! 뒤에 우주선 타고 날아가는 마지막 퍼포먼스는 무참히(ㅜㅜ) 잘려 아쉽지만... 그래도 멋진 거 어디 안 간다!

 

 

 

 

Track 08. I Just Can't Stop Loving You

  시다 가렛이 공동작사작곡 및 듀엣으로 참여했다. 톤이 굵직한 시다 가렛의 음색과 결이 고운 마이클잭슨의 고음이 어우러졌다. '예쁘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듀엣곡. 참고로 당시 이 곡의 듀엣 상대로는 당대의 유명 여성 보컬 여럿이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아레사 프랭클린 여사는 본인이 거절하셨고, 휘트니 휴스턴은 MJ 본인이 난색을 표했댔나... 결과적으론 시다 가렛이 곡을 잘 살렸다. 또 하나 더. 곡 도입부에 MJ의 독백이 들어간 이 유튜브 영상 버전은 <BAD> 초판에만 수록된 것.

 

 

 

Track 09. Dirty Diana

  그닥 좋아하는 곡은 아니지만, 뮤직비디오에서의 MJ는 진정 멋있다. 왜 하필 Diana가 Dirty했느냐에 대해선 이런저런 뒷얘기가 있는데, 개중 뮤즈이자 지금까지도 미스테리한 관계였던(...) 다이애나 로스를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이애나 로스는 이 앨범이 만들어지기 2년 전인가 3년 전 급작스레 결혼한 바 있다. 웸블리 공연 땐 당시 영국 왕세자비였던 故 다이애나 비에게 누가 될까 이 곡을 세트리스트에서 빼겠다고 공언했는데, 왕세자비가 직접 MJ를 찾아와 좋아하는 곡이니 꼭 불러달라고 했다고. 참고로 저스틴 비버가 이 곡을 그렇게 좋아한다나 어쨌다나.

 

 

 

Track 10. Smooth Criminal

  "Annie, are you OK?"라는 후렴구의 무한 반복과 중독성 강한 멜로디, 기승전결이 뚜렷한 가사는 물론 린댄스로 대변되는 멋진 안무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 홀로 집에 있던 Annie라는 아이가 살인자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의 가사로, <History>의 수록곡 'Little Susie'의 보다 대중적인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에선 "애니 아직도 안 괜찮아?" "이제 그만 괜찮을 때도 됐는데 애니"라는 등등 온갖 '애니 드립'이 난무하는 곡이기도.

 

  곡도 곡이지만 이건 뮤직비디오가 진짜 최고다. MJ는 물론 팝 전체를 통틀어도 이만큼 멋진 뮤직비디오가 있을까 싶을 정도. 마이클잭슨이 주연을 맡(...았다기도 민망한... 그냥 본인을 위한 영화였던)은 'Moonwalker' 영상의 일부로, 사실상 Smooth Criminal의 뮤직비디오다. 1930년대 시카고 풍 분위기를 유독 좋아했던 MJ가 기어이 '덕심으로' 만들어낸 그 시대 분위기의 곡이자 뮤직비디오이기도 하다. 참고로 25주년 앨범에선 이 곡의 모티프가 됐던 'Al Capone'라는 곡이 수록돼 있다. 작년에 발매된 <Xscape>의 7번 트랙 'Blue Gangsta' 역시 서부극 풍 MJ 음악의 연장선상.

 

 

 

Track 11. Leave Me Alone

  키치 기법을 활용한 이색적인 뮤직비디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곡도 좋다. 2011년 롤링스톤 지였나, (기억이 가물하지만) 이 곡을 두고 향후 음악성에서 재평가를 받을 곡이라 평하기도 했다. <BAD> 앨범 처음 들었을 땐 이 곡을 제일 좋아했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마이클잭슨의 고음, 그를 뒷받침하는 결 고운 백그라운드 사운드(역시 본인 목소리)의 조화가 놀랍다. 가사는 본인을 향한 황색언론들에게 고하는 일종의 경고랄까,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성토의 내용이다. 뮤직비디오 속 신문의 어처구니 없는 기사("마이클잭슨은 산소실에서 잠을 잔다" "마이클잭슨 외계인과 내통한다" 등)는 실제 그를 둘러싼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패러디한 것. 그만큼 평생을 가십언론에 시달렸던 사람이었다.

 

 


 

  p.s  참고로 이 음반, 김구라 씨가 추천한 팝 명반선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더랬다. 1987년 초판본은 진작 절판됐고, 그나마 제일 오랜 버전으로 남아 있는 게 1991년에 발매된 건데 이마저도 중고시장에서나 겨우 구할 수 있다. 최근 발매되는 <BAD> 앨범은 모두 25주년 기념음반으로 대체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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