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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떠오른 얼굴

by 디어샬럿 2015. 1. 12.

 

 

 

 

  이른 땅거미를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퇴근길 지하철 좌석엔 낯선 어깨들이 밭게 모였다. 살갗 모서리가 부딪는 그 공간에선 초췌한 얼굴들이 시선의 사벽을 둘러싼다. 지친 얼굴들이 형광등 아래서 적나라하다. 미세하게 깜빡이는 불빛을 따라 무심한 눈과 앙다문 턱이 점멸한다. 칼칼한 시선들이 텁텁한 허공을 맴돈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들이 처진 어깨를 더욱 내리누른다. 지하철은 언제나 그런 모습이다. 어릴 적 미술학원에 쪼롬이 서 있던 습작 같은 석고좌상을 떠오르게 한다. 부감 이외에는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았던 다비드 넷, 비너스 셋 따위들.


  문득, 얼굴이 떠올랐다. 눈을 들어 마주한 창에 희고 까만 얼굴이 도장처럼 찍혔다. 멀건 어둠으로 보얀 윤곽이 겹치더니, 말간 얼굴이 도렷하게 피어오른다. 

 

  조금 뜬금없게도, 그 사람이 드리운다.

 

  물기 어린 온기가 코 끝을 따갑게 맴돈다. 그림자에마저 체온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문 입으로 그의 이름을 따라 혀를 굴리면 어느새 입 안이 촉촉해지곤 한다. 지하철 안은 춥고 건조했다. 그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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