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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물욕과 죄의식

by 디어샬럿 2014. 12. 16.

 

 

 

 

  주말엔 풍월당엘 들렀다. 연말 정기세일이었다. 행사 첫날인데도 몇은 품절이 임박해 있었다. 아바도의 말러 1번이라든지 클라이버의 베토벤 5번과 7번, 카라얀의 차이코프스키 따위들. 나조차도 갖고 있는 명반들이니 당연했다. 호로비츠의 전곡 연주 실황, 첼리비다케의 브루크너와 브람스, 하이페츠의 희귀 녹음본 그리고 EMI의 마지막 레이블들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최대한 품위가 넘치게 찍은 사진과 온갖 찬사가 가득한, 심지어는 금장까지 둘러진 호화로운 커버에 자꾸만 홀린 듯 손이 뻗쳤다. 순간 얼마 없는 돈과 좁은 연남동 방이 오버랩 됐다. 입 안이 썼다. 애써 외면하고 매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클라이버 사후 헌정반 딱 한 장을 구매했다. 함께 한 D는 요요마의 이름 모를 곡을 찾아 온 앨범을 뒤지고는, 이내 풍월당의 엄청난 음질에 감탄하고선 스피커 앞엘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서면서도 온몸을 휘감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또 매대 앞을 서성이면서, 욕망 중 인간을 가장 구차하게 만드는 건 단연 물욕이리라 생각했다. 취향과 교양 등등의 모든 허울을 벗어던진 알맹이를 나는 그 순간 오롯이 마주했다. 내가 진짜 이걸 원하는 이유가 뭘까. 되물어 보아도 논리적으로 설명될 만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말들을 다 걷어내고 굳이 정리하자면 시청각의 자극이나 감수성 함양과 같은 상투적이고 뻔한 이유들...정도 될까. 취미란 게 논리나 납득의 영역으로 설명될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엇 하나 콕 집어 말할 수조차 없는 '애호'는 어딘지 공허하기만 하다 ―이런 걸 고민하는 정도라면 애초에 애호가 타이틀 달긴 틀린 걸지도 모른다―. 자신조차 합리화시키지 못하는 물욕이란. 그럼에도 갖지 못하면 공연히 침울해지곤 한다.

 

  인간을 가장 피폐하고 만드는 것 역시 물욕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세상에는 물욕보다 거대하고 본질적인 욕망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물욕만큼 충족되지 못했을 때 열패감을 자아내는 것은 의외로 드물다. 성취하지 못할 때의 불만족이라는 욕망 특유의 본질 위에, 내 능력―자본이나 기타 여러 상황―이 이것뿐인가 싶은 자괴감은 물론 '이따위 것'으로 고민하는 자신을 향한 분노까지 범벅이 된다. 돈이 뭔데, 이게 뭐라고, 근데 이것도 못 사는 나는 뭔데. 물욕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바닥과 마주한다. 사람 하나 서 있기도 비좁은 방과 모자란 여윳돈과 부족한 시간을 떠올린다. 기어이 물욕을 이겨낸 자리엔 승리감보단 패배감이 더 크게 비집고 들어온다. 이까짓 물건이 뭐라고 싶으면서도 못 가지면 한동안 허전하고 허무한 욕망. 인간의 손길이 미친 곳이라면 죄다 물욕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호모 컨슈머리쿠스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시대. 어쩌면, 현대인은 매일 자신의 밑바닥을 보며 사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클라이버의 슈베르트/브람스/바그너 헌정반을 들으면서 내내 물욕, 단 두 글자만을 떠올렸다. 1980년대 초반의 드레스덴 녹음반은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결이 성기고 브람스 교향곡 4번은 투박한 데다 거칠었다. 'Unique Artist' 'Legendary Recordings'라는 찬사가 덕지덕지 붙은 커버가, 잘 뻗은 콧대가 도드라지는 클라이버의 옆얼굴이 그렇게까지 초라해보인 건 처음이었다. 물욕이란 찰나에 급격히 피어오르다 갖는 순간 향과 색을 산화해 버리는 어느 꽃 같다. 기껏 손에 넣었더니 바스라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순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취한 욕망에서, 그를 취하지 못했던 때 이상의 공허를 가슴 가득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갖은 자기합리로 점철해 물욕에 충성하는 동안 나의 세계는 얼마나 충실해지고 있었을까? 내 자신의 영긂에 대해 나는 어디까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갖고 싶은 것과 취해야 할 것의 정확한 임계점을, 나는 과연 얼마만큼 파악하고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자신 없는 질문들이다.

 

  명동 인근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성당엘 갔다. 천주교와 인연은 없지만, 명동성당에 들러보고 싶었다. 교인이기도 한 D를 따라 미사를 본 후 고해소로 향했다. 길게 늘어선 대기석이 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무슨 죄가 있어 그리도 고백할 것이 많을까?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간은 매일 죄를 짓고 살지, 하고 D는 말했다.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고 보니 죄의식을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언제부턴가 나는 죄의식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됐다. 인간을 향한 해나 업을 넘어, 나의 행위 하나하나에 이어지는 인과에도 무책임했다. 당장 닥치는 욕망과 물음과 문제에만 골몰하는 사이 치열한 자기반성은 든 자리도 없이 사라진 건 아닐까. 잡고 있는 두 손이 부끄러웠다.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나는 공허하게 읊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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