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질문이라는 것이 단지 손에 수첩을 들고 겸손하게 설문조사나 하는 그런 리포터의 작업 방식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깨닫고 있었다. 기자란 그저 질문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아무에게나 어떤 주제에 관해서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신성한 권리를 지닌 자다. ... 기자의 권력은 질문을 던질 권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요구할 권리를 바탕으로 한다고 말이다.
부탁하건대, 모세가 정리한 하느님의 십계명 가운데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라. 이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짓말 마."라고 말하는 자는 그 이전에 "대답하라!"라고 말했을 게 분명한데, 하느님은 타인에게 대답을 강요할 권리를 누구에게도 부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명령하는 자와 복종해야 하는 자 사이의 불평등조차도, 대답을 요구할 권리를 지닌 자와 대답할 의무를 지닌 자 사이의 불평등만큼은 근본적이지 않다. 그래서 대답을 요구할 권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어진 적이 없다. 이를테면 범죄 사건을 심리하는 판사에게나 주어졌던 것이다. ... 하지만 그런 나라에도 열한 번째 계명의 지상권은 행사된다. 우리 시대의 도덕 체계는 이 열한 번째 계명에 의거하며, 기자들은 이 계율의 운영이 자신들의 손에 달렸음을 분명히 자각했다. 역사의 은밀한 주문이 이를 원하여, 헤밍웨이나 오웰조차 감히 꿈꾸어 보지 못한 권력을 오늘날의 기자에게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
"진실을 말하라!"라고 기자들은 요구하고, 우리는 물론 이렇게 자문해볼 수 있다. 열한 번째 계명을 경영하는 자에게 있어 "진실"이라는 말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 열한 번째 계명이 요구하는 진실은 신앙이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가장 낮은 층의 진실, 전적으로 실증주의적인 사실관계의 진실이다. ... "B와 내연의 관계입니까?" 하고 기자가 묻는다. C는 거짓말로 B를 알지조차 못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기자는 속으로 웃는다. 이미 오래전에, 그가 일하는 신문사의 한 리포터가 C의 품에 안긴 벌거벗은 B 사진을 찍어두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 그 스캔들을 대중에게 폭로하는 것뿐이다.
- 밀란 쿤데라, <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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