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찍부터 나름대로 한 권의 자서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글로 씌어졌거나 서점에서 팔리는 실제의 책은 아니다. 마음속에 씌어져 있는 것이다. 하기야 그런 식으로 쓰여지지도 않은 자서전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사람이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엔 자신의 그런 자서전을 한 권씩 지니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나 같은 주제에 건방진 소리가 될지 모르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결국 그 마음속의 자서전을 현실 가운데에서 실현시켜가는 과정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어떤 사람은 구국 성웅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을 자기 자서전으로 삼고 살아가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좀 뭣하기는 하지만 오나시스 같은 거부나 카사노바 같은 바람둥이를 그 자서전의 모델로 삼아 살아갈 수도 있다. 페스탈로치, 히틀러, 신성일, 전봉준, 카루소, 나이팅게일, 아인슈타인, 안창호, 슈베르트, 톨스토이, 김희로, 슈바이처, 나폴레옹......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외국인이거나 나라 안 사람이거나, 또는 위대하거나 그렇질 못하거나, 우리 자서전의 인물상이 되어줄 사람은 얼마든지 많은 것이다.
- 이청준, <문단속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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