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Human Nature

by 디어샬럿 2014. 8. 2.

 

 

 

 

 

 

 

 

 

  동이 틀 무렵이면 이 노래가 들린다. 알람으로 해 둔 탓이다. 감은 눈으로 들어오지 않는 아침을 귀로 먼저 맞는 셈이다. 알람이란 울릴 줄을 알아도 언제나 뜬금없게 느껴지기 마련. 꿈의 세계를 느닷없이 찔러오는 피뢰침 같은 소리에 기함하며 일어나선, 고작 십 분도 늦춰 울려주지 않는 기계의 무자비(?)에 애먼 짜증을 부리게도 된다. 그래선지 보통은 한 달쯤 들으면 웬만한 노래는 두 번도 더 듣기 싫어진다. 제 아무리 꽂힌 곡도 마찬가지였다. 한두 달은 더 들을 수 있는 걸 괜히 알람으로 했다가 질려버렸다며 순간의 선택을 탓한 적도 여러 번.

 

  Human Nature는 다르다. 잔잔하게 일어나기 이처럼 좋은 곡이 없다. 겨울이면 여명이 어슴푸레 드리워 오는 새벽의 뒤안길을, 요즘 같은 여름엔 진푸른 지평선 위에 발갛게 겹쳐오는 수평광의 장관을 이 음악과 맞는다. 마치 풍경의 일부처럼 스며드는 선율에 채 질릴 여지가 없다. 자연의 조각처럼 또는 새벽의 일상처럼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새벽에 이 노래를 들으며 동백섬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특히 좋아한다. 곤빛 하늘을 입은 도시의 민낯이 잠 덜 깬 눈으로 들어오는 순간. 간간이 들려오는 파도음만이 유일한 소리인 그 공간이, 때론 고요로써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곤 한다. 이런저런 생각 없이 새벽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의 음악. 들을 적마다 맨 도시의 날숨을 안은 푸르고 붉은 색감이 아른거린다.




Looking out, across the night time
The city winks a sleepless eye

Hear her voice, shake my window
Sweet seducing sighs

Get me out, into the night time
Four walls won't hold me tonight


If this town is just an apple
Then let me take a bite

**

If they say why, why
Tell'em that it's human nature
Why, why
Does he do me that way

If they say why, why
Tell'em that it's human nature
Why, why
Does he do me that way

-

Reaching out, touch a stranger
Electric eyes are ev'rywhere

See that girl, she knows I'm watching
She likes the way I stare

**
**

I like livin' this way
I like lovin' this way

-

Looking out, across the morning
Where the city's heart begins to beat

Reaching out, I touch her shoulder
I'm dreaming of the street

**
**

 

 

 

 

 

 

  Human Nature 라이브 하면 역시 웸블리 배드 투어다. 8만이 넘는 좌석이 열흘 연속으로 매진돼 기네스북에 등재된 공연. 1988년, 우리 나이로 서른 하나의 마이클잭슨― 아저씨는 오팔년 개띠... 감히 아버님이라 불러드려야 할 것 같다 ―의 모습이다. 서른이면 노장 취급 받았던 당시 기준에선 상당한 동안이다. 지금으로 쳐도 또래에 비해 젊어보일 축. 목 상태는 87년 공연들이 조금 더 괜찮지만, 이 라이브는 3절 후렴구에서의 관객 떼창만으로 기존의 모든 공연을 압도한다. 전성기 중 전성기의 모습이라 보기도 편하다. 스러지는 조명 아래서 영 떠날 사람처럼 등을 보이며 무대 뒷편으로 걸어가는 마이클잭슨의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남는... 라이브이기도.

 

  그나저나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세련된 의상과 헤어. 마이클잭슨만 보면 이질감이 전혀 없다가 관객석이나 코러스 쪽으로 카메라가 돌아가면 아이구야... 쌍팔년도 맞구나 싶다.

 

 

 

 

 

 

  84년 토론토 라이브에서의 Human Nature. 빅토리 투어, 잭슨즈 활동 때다. 함께 후렴구를 부르는 잭슨 형제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 투어를 마지막으로 그는 잭슨즈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 시기까진 아직 개인활동으로서의 투어는 없었다. 잭슨즈 투어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는 후일담도 들리는 걸 보면 추진은 했던 것 같다. 되기만 했다면야 얼마나 주옥같은 라이브가 쏟아져 나왔을지... 새파랗다는 말이 더 이상 어울릴 수가 없을 만큼 젊디젊은 마이클잭슨.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편곡 버전. 그의 편곡은 감각적이다. 잠들어 있던 숨은 선율이 통통대며 튀어오르는 것 같다. 아무리 오래된 팝이나 락도 그의 손을 거치면 세련된 재즈곡으로 탈바꿈한다. 확실히 그런 쪽으론 거장 중에 거장이다. 정작 그의 쿨&컨템포러리 재즈곡은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되지만. 


  Human Nature는 마일스 데이비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편곡 넘버였다. 여타의 편곡본들에 비해 손을 댄 것도 거의 없다. 원 멜로디가 워낙 R&B 흔적이 강해설까. 스릴러 음반을 맡았던 세션이 당대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로 중무장됐던 덕인 듯도 하다. 이 곡을 연주할 때면 관객들 반응도 참 좋았다. 2010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선 추모곡으로서도 연주됐다. 팔십 몇 년도 토론토였나 몽트뢰 실황 라이브가 참 괜찮은데. 어느 책장에서 잠자고 있는지 모르겠다.

 

 

 

 

 

 

  믿고 듣는 글리 편곡 버전. 어쿠스틱을 주로 배치했다. 원곡과는 정반대의 사운드에 가까운데도 특유의 분위기가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화음 멋진 거야 두말 할 필요도 없고. 마이클잭슨 편 방송분 중 하나. 글리로선 이례적으로 한 아티스트의 이야기에 에피 전체를 할애했다. 새삼 그의 명성이 확인되는 부분.

 

 

 


 

 

 

  숨을 거두기 직전 This Is It 리허설에서의 Human Nature. 영화를 보는 내내 흐르던 눈물이, 결국 이 노래에 이르러 통곡으로 변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꺽꺽대며 울었다. 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울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런던공연 기자회견을 CNN 생중계로 봤을 때도,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했을 때도, 그보다 한 살이 많은 아빠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아까운 사람이 갔다 했을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을 정말로 좋아했지만 인간적 애정과는 별개였다. 사람으로선 좋아하기 전이나 아티스트로선 꽤 깊이 좋아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노래와 영상을 웬만큼 다 챙겨 보고 들었음에도 왜 팬은 아니었을까, 하는 건 나도 잘 모르겠다. 감정이 논리와 합리 따위와 언제나 합치되는 건 아니니까.

 

  영화를 본 건 개봉 후 1년이 지난 때였다. 그 날은 정말 추웠다. 사방 가득한 찬 공기 탓에 수시로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학교 새 기숙사의 커다란 이중창 너머로 비 같은 눈까지 바쁘게 흩날렸다. 며칠 뒤는 생일이었다. 신보 소식에서 마이클잭슨 이름을 보았다. 사후앨범이었다. 씁쓸함을 곱씹다가 문득,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힘들었던 한때를 나게 해 준 예의로라도. 방안엔 노트북의 네모난 빛만이 퍼졌다. 예전과 다름없이 노래하는 그를 보며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벌어진 입으로 볼썽 사납게 흘러내릴 게 뻔했을 눈물인지 콧물인지의 짭조름한 맛을 느끼며 생각했다. 아, 내가 의외로 이 아저씨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구나. 그라는 인간을 좀 더 좋아해주지 못한, 그의 마지막 길을 조금 더 슬퍼해주지 못한 날들을 조금은 후회하면서.

 

  그 후로 두 번은 못 보고 있다. 영화의 모든 것이 슬프다. 더 말라버린 모습이 안쓰럽고, 곧 세상을 떠날 것도 모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리다.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던 그가 너무나 아까워서 눈물이 난다. 특유의 섬세하고 시적인 파스텔 빛 언어들에까지도 마음이 미친다. 느릿한 어투로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고르던 사람이었다. 공백의 시간들이 무색하게 이런저런 의견을 관철하다가도 "화내는 게 아니야, 잘 해보자는 거야"며 조곤조곤 달래던 사람. 원색의 노골적인 적의들이 이 사람에겐 얼마나 아프게 다가왔을지... 김태호PD도 어느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는데, 많이 공감했었다. 뒤늦게 찾아읽은 영화잡지에서 우연히 본 팬심 가득한 말 한 줄에 또 엄청나게 울었던 어느 여름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이맘때였던 것도 같다.


 

 


  네버랜드 매각 소식을 접했다. 이제 세상에 없는 이의 집이니 당연한 일일 테지만, 못내 이상하고 아쉬운 기분은 역시 어쩔 수가 없다. 전성기 그의 모든 생애가 고스란히 깃든 집이다. 그이의 존재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아무쪼록 그의 흔적만은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하지만... 돈 문제란 건 기대할 게 못 되니. 마음은 미리 접으려 한다. 박물관 같은 걸로 개방이라도 돼서 언젠가 한 번은 둘러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괜한 마음에 이 노래를 들었다. 까만 밤의 Human Nature도 참 아름답구나, 가사가 자꾸 맴돈다. 

 

 

 

 

 

 

'평론과 편린 사이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n In The Mirror  (0) 2014.08.07
담백하게, 抱きしめたい  (0) 2014.08.02
어느 새벽의 9번 트랙  (0) 2014.07.29
These Foolish Things  (0) 2014.07.24
RIP, Maestro.  (0) 2014.07.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