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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

이해한다는 것의 기만에 대하여

by 디어샬럿 2023. 9. 29.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글을 써대는 저를 보고는 이상한 애야, 라고 간단하게 이해해버렸겠지요.

아빠는 제가 쓴 문장들에 줄을 그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네가 아니야. 너는 이 생각들에 줄을 긋는 사람이야. 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겁먹지 말고 가만히 지켜봐. 그다음에 너는 그 생각에 줄을 그어 지울 수 있어. 지금은 공책에 써서 지우지만, 나중에는 머릿속에서부터 지울 수 있어. 어떤 생각을 지우고 어떤 생각을 남길지는 네가 선택하는 거야. 마음껏 생각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생각을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너의 미래가 될 거야. 그 소설가가 "모든 글'쓰기'는 글'짓기'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아빠의 그 말을 떠올렸어요. 그렇게 수많은 생각들을 받아 적고 또 지워가면서 십대를 보냈습니다. 차츰 저는 제 머리를 라디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끌 수 없는 라디오 같은 것 말이에요. 거기에서는 온갖 방송들이 흘러나오니까 마음에 드는 방송을 찾아 들으면 되는 것이죠. (...)

그러니까 선생님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실 거예요. 인간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잖아요. 모든 게 잘될 거라는 희망에 붚루어 잠들었다가도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아침을 맞이하기도 해요. 인간의 실존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인 이야기예요. 그럼에도 저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생각들만 선택해왔습니다. 선생님이 방송에서 저더러 자기기만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데 아주 능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놀란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맞아요, 저는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 역시 기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저의 수많은 모습 중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모아 저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척척 맞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그것은 기만입니다. 실제의 제 삶은 앞뒤가 척척 맞아떨어지지 않거든요. 제가 선택한 제가 그럴싸한 이야기였듯이 선생님이 분석한 저 역시 또다른 그럴싸한 이야기겠지요. (...) 그러나 아시겠지만, 저는 그 어떤 이야기도 아니에요. 저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카오스 그 자체예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

아까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 "진주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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