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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감사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by 디어샬럿 2020. 11. 17.

<허블>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그 '작품'은 거대 우주망원경에 비친 가장 아름다운 우주를 43분간 압축한 화보집과도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 제목을 마주한 이라면 누구나 예상 가능할 법했을 터다. 한때 소년형 미남의 상징이었으며 이제는 연기파 배우 반열에 오르내리기도 하는 헐리웃 배우의 내레이션을 앞세운 홍보문구보다, 오직 '3D우주'라는 글자가 내 눈에 박혔다. 심지어 아이맥스라는 타이틀까지 붙어, 나는 이 다큐 하나를 위해 잠에 절은 몸을 가까스로 일으키며 기어이 맥북 프로를 켜고야 말았다. 불 꺼진 방의 어둠에 덧대어 점점이 재생되는 우주는 정말이지 -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원래 우주를 좋아하지만, 어젯밤의 우주는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시간마저 무력해지는 광막하고 고요하고 무한한 공간. 시간을 이기는 유일무이한 공간처럼 생각되다, 그 무한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시간도 공간도 아닌 그 자체라는 특수성만이 느껴지는,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 그 속에서 제각기의 모습으로 분연히 빛나는 행성과 항성과 성운 그리고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무궁한 가능성들에 나는 늘 매료됐다. 우주를 빌린 어느 존재 하나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째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것들은 하나같이 빛나고 독특하며 유일할까. 이토록 깊고 아름다운 무한이 '있을' 수 있음에, 심지어 그것이 이 땅의 모든 존재와 삶의 근원이라는 데 나는 언제나 감탄했다. "우리는 모두 별의 조각"이라는 칼 세이건의 말을 떠올릴 때면 객쩍게도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그래서 매 순간 진심을 다해 감사할 수 있었다.

사실 요사이 나는 감사와 거리가 먼 시간을 건너는 중이었다. 제대로 감사해하지 않았다. 고마워하는 순간보다 서럽고 주눅들 적이 조금 더 많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도 한 것이고, 그 시선에선 마땅하기까지 한 선택이며, 심지어 이미 흘러가버린 그 모든 것들에 대고 - 나는 앙금의 꼬리까지 좇으며 이따금 울고 때로는 분노했다. 나조차도 낯선 요즘의 내 앞에 펼쳐진 우주는, 당연하게도 여전히 아름답고 낯익게도 놀랍도록 찬란했다. 그래서 정말로 눈물이 났다. 영원도 지속도 없는, 오직 이 자체로 언제나 아름다운 내 삶의 기반이 있음에도 나는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

그리하여 이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나의 시공을 필히 더 잘 살아내자고 다짐했다.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며, 더 미안해하고, 더 보듬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불안과 분노로 풍화해버린 감사의 토양을 진심어린 고마움으로 조금 더 다지고선, 용기내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믿어주어, 지지해주어 감사하다고. 언제나 마음쓰고 더러는 걱정도 하며 시시때때로 사랑하고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고 꿈을 꿨다. 모처럼 포근하고 달콤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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