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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감사

누적분 감사

by 디어샬럿 2020. 11. 10.

https://youtu.be/Wn9E5i7l-Eg

Pet Shop Boys,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


내려놓으니 보이는 것이 있다. 물러서니 도드라지는 것이 있다. 어젯밤 문득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애꿎은 화살의 표적이 됐던 애먼 마음이 보였다. 나와 양감과 질감이 다른 시간을 건너고 있는 그에게, 나는 오직 나의 시공으로 바라보며 군마음을 먹고 있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악 물고 간신히 견딘 시간이 있는데도, 나는 불과 몇 달 만에 정반대의 입장이 되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어젯밤 막차를 타는데 문득 떠올랐다. 이 시간은 어쩌면 그간 제대로 느끼지 못한 모든 감사한 것들을 오롯이 받아들이기 위해 주어진 순간이 아닐까 하고. 느닷없이 튀어오르는 맥박을 심호흡으로 잠재우며, 밤과 아침을 오가며 생각한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누적분의 감사를 다 전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시간과 내 마음과 근원을 알 수도 없는 인과들이 빚어낸 이 사건들 그리고 억울함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도 했다. 그리하여 섶을 진 부나방의 마음으로 장렬히 불태우고 시원하게 말의 포화 한가운데 서겠다며, 어떤 의미에서는 개운하기도 한 다짐을 해 본다. 이런저런 걱정엔 미안한 말이지만, 별 소리 다 들어온 삶인데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니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내 방식으로 이 시간들 꽉 채우고 건너가야지. 그러니 남은 것들에 누적분의 감사를 다해야겠다. 애증의 밀도만큼 지워지지 않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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