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밀의 화원/일상

이것은 무엇일까

by 디어샬럿 2019. 4. 7.

다자이 오사무가 어느 책에선가 썼다. 단편집 <사양> 속 구절이었던 것도 같다.

-

사랑,
이라 쓰고 더는 문장을 쓰지 못했다,

-

였던가. 처음 이 한 줄을 읽고서 그만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내가 그때까지 본 사랑 예찬 중에선 감히 가장 완벽하대도 좋을 것이었다. 아니, 예찬...이라기보단 비탄과 허무와 머뭇거림과...... 사랑을 겪은 누구나 마주했을 그 공백의 크기에 한동안 멍하니 그 문장만 눈에 몇 번이나 새기곤 했다.

그때의 나는 차마 예찬하기엔 지독하게 고약하고 악랄했던 사랑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스스로 말하려니 새삼스럽지만, 어딘지 위태로웠던 시간이었다. 미디어의 사랑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없었기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사랑은 내가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자부하고 장담했던 나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사랑에 뒷머리를 잡혀 눈도 돌리지 못한 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바닥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울었다. 그러다가도 뭉근한 애잔함에 혹은 소담한 행복에 그 거친 시간에조차 감사하던 날들. 이건 대체 뭘까, 이걸 감히 사랑이래도 좋은 걸까. 나는 '사랑'이라는 아찔한 담론 앞에서 하릴없이 무너지곤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문장을 꼭 그러쥐고, 문호조차도 더 이르지 못한 '사랑'의 뒤에 남은 여백에 몇 번이나 의지했다. 그 문장은 당시의 내겐 위안이었다. 내 육 년 여를 통째로 차지했던 짙은 회의가, 그 언어들로나마 희석되고 있었다. 이 앞에서는 누구든 허물어지고 마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시간들을 더는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고.

-

요사이의 나는 그때의 것들이 다시 떠내려오는 듯한 어느 굽이를 건너고 있다. 그때만큼의 농도는 아니지만, 왠지 알 것 같은 시간들과 재회하는 중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들이치는 가운데서 그때를 닮은 무언가가 자꾸만 살갗을 스치는 날들. 그때보다 조금 더 짙고 좀 더 어두우면서 더 알 수 없는 그것들이, 유속을 타고 더욱 빠르게 내 시간의 한가운데로 몰려들고 있다. 대체 이건 뭘까 한참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통증과 기침으로 이불에 몸을 싸매고 누운 이 시각에조차도 언젠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한 마디를 조심스레 떠올리고 있다.




사랑일까.

'비밀의 화원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들  (0) 2019.07.20
작고도 큰 것  (0) 2019.06.25
이런 하루  (0) 2019.03.08
빵 헤는 밤  (0) 2019.02.16
일단 뜨겁게 청소는 했는데  (0) 2019.02.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