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회사가 관할하는 지하철 선로에서 취객이 발견됐다. 공문상의 ‘주취자’는 20대 청년으로, 경찰에 인계돼 심문을 받을 때까지 술에서 깨지 못해 횡설수설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지하철 선로로 들어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술에 완전히 잠식돼 버린 듯했다고. 남자가 발견된 건 오전 6시 42분께. 다행히 러시아워를 빗긴 시간대였고, 종점에 다다른 구간이라 열차 운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마 그 시간에 나는 한창 회사로 가는 길이었을 거다. 어제는 7시 조금 넘어 사무실에 도착했으니, 그때쯤엔 내가 탄 열차가 대연역 즈음을 지나고 있었겠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감은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시간을 보냈다. 사무실을 정리하고 지역 대표 일간지라는 신문 두어 개를 눈으로 훑으며 회사 관련 소식의 게재 여부를 점검한 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7시 반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일일상황보고가 그 즈음 전송됐다. 하루에도 몇 건 씩 발생하는 출입문 끼임, 발 빠짐, 넘어짐... 그리고, 선로무단침입. 웬만해선 볼 수 없는 생경한 글자였다. 동시에 이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비상상태임을 감지하게 되는 몇 안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차량기지도 폐선도 아닌, 버젓이 운행 중인 선로로의 무단 침입. 예사 사건이 이닌 탓에 추가 상황보고가 이어졌다. 술에 잔뜩 취한 20대 청년이 선로에서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했으며, 종점과 가까운 그 역 인근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에 서행 지시가 내려졌고, 인근역 역무원이 급히 전동차에 타고 찬찬히 살핀 결과 기둥에 기대어 있는 ‘취객’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 일도 없었네. 그러나 안도는 순간이었다. 곧 내 안에서 가볍지만 날카로운, 분노에 가까운 짜증이 일었다. 도대체가 제정신인가? 이러다 까딱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이랬을까? “현재 해당 남성은 여전히 만취 상태로,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 이기지 못할 술을 왜 이 지경으로 마셔서... 보고서의 맨 마지막 문장을 보고 육성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2년차에 어울리지 않게 감히 혀도 끌끌 찼던 것 같다.
바쁜 것들이 좀 지나가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8시 20분쯤 되자 팀장님이 출근하셨고, 조금의 유예를 둔 후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저, 팀장님, 이거, 기자 전화 많이 올 것 같습니다... 팀장님은 보고서를 보시며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다, 일단은 기다려 보자고 하셨다. 반은 맞는 말이었다. 일단 오전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일상적인 업무 전화를 제외하면 급한 연락도 없었다. 그럭저럭, 평온했다.
점심시간 끄트머리에, 전화가 왔다. 이름이 뜨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는 기자 중 하나였다. 나쁜 사람이 아닌 걸 아는데도, 아니 오히려 좋은 사람 축에 드는 이인 걸 알면서도, 지난 연말에 된통 당한(?) 후론 핸드폰에 뜨는 것만으로도 코르티졸이 분비되는 듯한 이름이었다. 직감했다. 그 건이구나. 역시나였다. 경찰 쪽에서 뭐가 나갔다고 했다. 통상적으로 이런 일은 해당 기관에 먼저 알린 후 보도자료를 내도 내는 법인데.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나는 또 한 번 그쪽 홍보실의 무례함에 조용히 치를 떨었다. 궁금해하는 것들을 대충 확인해 주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사무실 내선전화에는 낯선 번호들이 연달아 찍혀 있었다.
시작이었다. 근 두 시간을 여기저기 소속이라는 기자들의 전화에 일일이 답하며 보냈다. 좋은 소식에는 연락도 없다가, 이런 일엔 꼭 빠짐없이 전화를 해 오는 몇 명의 기자가 포함돼 있었다. 그런 전화를 받는 날엔 인간이라는 존재에 회의감을 품게 된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뿐인데, 이쪽도 이런 게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그들을 적에 준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회사 내 부서들에 좀 더 자세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추가로 기자들에 답변하고, 상황을 좀 더 파악하는 새 기사들이 말 그대로 ‘미친듯이’ 올라왔다. 이건 뭐 안 실은 매체를 손에 꼽아야 하는 정도였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욱 하고 올라왔다. 그렇잖아도 수장이 바뀌어 잔바람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땐데, 이런 것까지 가세해서 흔들어 대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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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화를 받은 건 오후 3시 30분경이었다. 문제의 ‘주취자’가 내린 종점역의 역장님이었다. 쇳소리가 많이 섞였지만 특유의 차분한 어조가 묘한 신뢰감을 심어주는 목소리를 지니신 분이다. 통화할 일이 많았던 탓에 역장님들 중에선 드물게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이신 그 분께서 조심스레 운을 떼셨다.
김 주임, 조금 전에 그 젊은이 어머니란 분이 역으로 전화를 하셨는데요. - 역장님은 이 문장을 내뱉으신 후 조금의 여유를 두고, 다음 말을 이어가셨다 - 그 젊은이가 이제 술이 많이 깼답니다. 하는 말이, 자기는 차에서 내렸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가길래 나가는 쪽인 줄 알고 따라갔고, 그냥 정신 없이 걸었는데 뭐가 계속 어두워지더래요. 들어보니 첫 차 청소하신 용역 아주머니와 그 시간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기지로 들어가는 걸 승객이라 착각한 모양입니다. 어머니가... - 역장님은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침을 꿀꺽 삼키시는 것도 같았다 - 하시는 말씀이, 젊은이가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둘이서 어렵게 자랐답니다. 어머니도 보험일 하시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시는 모양이에요. 이 친구가 대학생인데,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그만 이렇게... 일을 저지른 것 같다고 그럽디다. 젊은이도 정말 많이 뉘우치고 있다네요...
달갑지 않은 전화와 쏟아지는 기사들, 자연히 날이 잔뜩 선 사무실 분위기, 가시지 않은 분노에 가까운 짜증... 모든 것이 이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날아든 어딘지 감성적인 그런 말들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온도차가 너무 컸달까. 머리는 이해하는데 가슴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는 찰나에 그런 생각도 했다. 역장님도 그걸 아시기에 이렇게 조심스러운 것이리라. 나는 자칫 무례하게 들릴까 조심하며 말을 이었다. “역장님, 저도 그 분의 사정이 너무 딱하다는 걸 잘 알겠지만... 선로에 무단으로 들어간 만큼 철도안전법 상 과태료 대상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기자들이 이 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너무 많이 물어오고 있습니다. 일단 해당 법령에 처벌 규정이 없어 고발이 불가능하다고는 전달했지만, 만약 우리가 자의적으로 과태료 처분까지 안 해 버리면...”
아니아니, 그런 뜻은 아닙니다. 우리 역에서도 시에 과태료 처분을 요청할 거예요. 그냥 이런 사정이 있다는 것... 그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역장님은 조금은 급하게, 하지만 여전히 조심성을 잃지 않은 채 말씀하셨다. 과태료가 천 만 원이니까, 어머니 되시는 분이 좀 망설이는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속 사과하시고, 그러고 가셨습니다. 기사화는 너무 많이 안 되게, 혹 가능하면 김 주임이 힘 좀 써 주세요. “역장님... 저도 정말로 그러고 싶은데, 일이 이미 저희 손을 떠나 버렸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애초에 우리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은 군더더기였다. 어떤 상황에선 싹을 쳐 버려야 하는 말이란 것도 있게 마련이었다. 나는 금세 피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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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흐르고, 그 하루마저도 시간 속으로 접어들려 하는 밤이 되니 문득 생각이 난다. 아니, 실은 ‘선로의 청년’이 불쑥불쑥 온종일의 틈마다 솟아난 하루였다.
내가 그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저녁쯤 되자 돋아났다. 그는 단지 그 나이의 여느 청년이 그러는 것처럼 친구들과 진탕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니 오죽 반가웠을까. 왁자지껄하고 다붓한 이야기들이 오간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 최대 번화가에서 지하철 첫 차를 탔다. 종점임을 알리는 방송과 축 처진 자신을 흔들어 깨웠을 것이 분명한 어떤 손길을 느끼며 얼떨결에 눈을 떴고,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 당연하게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을 거다. 그곳의 기지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아주 한적한 지하철 통로처럼 보이기도 하니, 청년은 출구가 있을 법한 곳으로 걷고 걷고 또 걸었을 터.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바깥세상은 보이지 않고, 외려 좁고 어두워지기만 하는 길에 덜컥 겁부터 났을 것이다. 딴엔 어른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떨치며 길을 걷다, 참다참다 경찰에 전화를 한다. “저기, 제가 지하철을 타고 내렸는데요,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청년의 신고 내용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내린 종점역에서 1km하고도 반이 더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상선과 하선 사이, 기둥에 꼭 붙어 벌벌 떨며 서 있었다고 했다. 이 회사의 일원이 된 후 반 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아주 가까이서 지하철 전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영화 촬영 협조 건으로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알게 된 폐선로에서였다. 기둥칸을 멀찍이 둔 거리였는데도, 근 7-80km로 돌격해 오는 밝은 불빛의 전동차는 심장을 졸아붙게 만드는 게 있었다. 어두컴컴한 선로 안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강렬한 빛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려오는 크고 긴 물체.
그는 무려 그 기둥칸에서, 바로 옆을 지나치는 두 대의 그것들을 번갈아 지켜봐야 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의 사나이. 긴 어둠으로 이미 잔뜩 두려움에 움츠러든 사나이. 그 사나이의 옆을 지나치는 전동차... 그가 마주해야 했을 공포가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24시간을 지나오고 나서야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아마 그 순간, 하나뿐인 어머니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 나이야말로 단지 아이일 뿐인 걸 너무나도 잘 안다. 아직 군대도 안 다녀 온, 몸만 큰 아이인 그는 속으로 얼마나 애타게 엄마를 찾았을까.
나는 조금 울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나와 내 사람이 아닌 것들에 대해 조금씩, 그러나 지나치게 벽을 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킬 것들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 같은 날엔 내가 만든 벽이 정작 나를 가둬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한 번씩은, 못 견디게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비밀의 화원/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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