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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나의 어떤 면모를 너는

by 디어샬럿 2018. 7. 1.

요 며칠 줄곧 그곳을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솔직히 고민했다. 그래도 맞는 것 같다. 후회하지는 않을 거다. 아닌 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그렇게까지 나를 외면한 곳을, 단지 ‘남아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시간을 들일 이유가 없으니. 게다가 그곳이라면 더더욱. 자기합리화래도 할 말은 없다. 그저 이젠 내가 후련하면 됐다는 생각 뿐이다. 덕분에 늘어난 휴일의 시간, 늘어지게 책이나 읽어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읽던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이번 작품은 유독 독백이 많다. 철저하게 자의식으로 점철된 주인공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이 한 명 한 명의 등장인물이 진정 ‘객관적인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인지 점진적으로 의심의 폭을 넓히게 된다. 오로지 주관적이며 심지어는 왜곡까지 가해진 듯한 주인공의 세계 속 인물들의 현실성에 의문을 품으며 읽는다. 나는 이 이의 시각을 온전히 믿어도 되는 걸까. 아리아드네의 실을 쥐어들고서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으로 발을 내딛는 테세우스처럼, 나는 무엇도 완전히는 믿을 수 없는 텍스트의 굴을 화자의 시각에 의지한 채로 비틀비틀 통과한다. 그러다 문득, 어제의 그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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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정의랄까, 인상의 범주에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여겼던 나의 면모를 타인으로부터 듣게 되는 날엔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진다. 나의 시야가 오롯하고도 완전한 나를 담아낸다고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판단하는 나의 영역에서 ‘나’라는 존재의 일부일 것이란 가능성조차 품어본 적 없는 ‘나라고 일컬어지는’ 모습을 누군가를 통해 알게 된다는 건... 꽤나 기분이 묘하다. 좋은 의밀까, 내가 나를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 실은 남들은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 걸까. 난데없이 찾아들던 생각들과 마주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던 어제와 오늘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신경이 참 많이 쓰였을 텐데, 이젠 아무렴 그마저도 나이지 않을까 넘기게 된다. 뭐 어때, 그래도 어때, 다 나인 것을. 그런 뜻으로 말할 아이도 아닐 뿐더러, 설령 그런 의미였대도 뭐 어때. “생명력” “하고잽이” “활력”이라는 언어들이 애써 희석해 주었던 나의 어떤 면모, 실은 내 스스로 그런 말까지 들을 ‘의지에서의 자격’이 있나 겸연쩍어지는 그 면모를, 정말로 직설적이고도 전투적으로 드러내어 준 S의 말을 생각했다.

“누나한텐 약간 뭐랄까. 세상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하는 느낌 있잖아요.”

조탁이 가해지지 않은 원석의, 혹은 전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말들. 나를 향한 나름의 느낌에 단지 언어를 그대로 덧씌운 정도이기만 한, 정을 전혀 맞지 않은 생생한 단어들을 생각할 수록 조금 웃음이 난다. 세상을 이기기엔 내가 너무 작은 존재인 것은 같지만 네 안에서나마 내가 그런 사람이라니 어쩌면 나는 참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사람이겠거니 싶다.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말 뒤에, 고마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단 한 번도 승패의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지는 않았다는 말을 실은 하고 싶었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야 있어도 소중한 기회들과, 너를 비롯한 좋은 인연들과, 두 발을 딛고 살아가게 해 준 터가 있는 나의 세상과 삶의 모든 틈에 감사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관뒀다. 그의 생각에 꼭 반박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S의 눈에 비치는 그런 나 역시도 나일 것이며, 그 아이의 시각도 온전히 존중돼야 하는 것이니. 그러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늘 그랬듯 이렇게 잘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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