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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어느 고요

by 디어샬럿 2018. 1. 23.


여느 때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출근했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놀란 얼굴을 마주하고 아차 싶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아뿔싸, 바늘은 각각 6과 10(도 채 못 간 그 언저리)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씨들은 잠이 많은데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어요? 그러게요, 저도 방금 시계 보고 깜짝 놀랐네요. 평소와는 조금은 결이 다른 인사를 주고받은 뒤 컴퓨터를 켜고 어제 채 비우지 못한 정수기 잔여물 컵 - 마뜩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이것저것 끼워맞춘 단어인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을 비우는 동안, 아주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밤새 널브러진 이 작은 공간을 추스르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께서 청소하시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간은 청소를 마치고 부랴부랴 나오시는 종종걸음 속에서 급히 인사를 나누었던 탓이다. 아주머니는 항상 그런 걸음을 하신다. 직원들에게 행여나 ‘들키’기라도 할까, 종종종. 어떤 마음인지 알고 싶지만, 언제나 묻지 못한다. 아니, 묻지 않는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대답해 주실 리도 없거니와 행여라도 마주할 진심에 대면할 방법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빨리 하고 나와드려야 일을 하시지요” 따위의 대답이 담게 마련일 거대한 의미들을 헤아리기에는 지금의 나 자신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늘 그랬듯 아주머니가 종종종 사라지신 후, 모처럼 긴 고요를 맞았다. 너끈하고 길쭈름하게 이어진 침묵이 주는 편안함을 모처럼 온전히 느꼈다. 적당히 낯설면서도 영 불편하지는 않은 공간이 주는 고요를, 나는 예전부터 가장 좋아했다. 이를테면 아침 일찍이나 주말 오후의 텅 빈 교실이라든지, 시작 시간을 한참 남겨두어 아무도 오지 않은 고사장이라든지, 오늘처럼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통과하는 회사라든지... 아주 자연스러운 고독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그 시공은 내게 묘한 안정감을 주곤 한다. 온전히 이 공간과 내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순간을, 나는 언제나 좋아했다.

하지만 아직은 회사의 고요는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나 빨리 왔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은 또 빨리 간다. 별 거 한 것 같지도 않은데 금세 7시 반... 하나둘씩 부서 분들이 오신다. 오롯한 적막을 들이마시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하루에 다시 뛰어든 오늘의 나. 다시 누군가로써 웃고, 무언가로써 고민하며, 어느 지점을 향해 달리는 나. 그리고 잠깐의 고요 아닌 고요를 틈타 괴발개발 무언가를 남겨보는 나. 그래, 모든 게 사랑스럽고 말고. 홀로 자분자분 고개를 주억이며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의 여유도 끝자락을 펄럭이는, 어느 고요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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