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밀의 화원/일상

야상문 (夜想文)

by 디어샬럿 2016. 11. 15.


밤에 쓰는 글은 찢어 버려야 한다더니 참말이다. 새벽녘에 웬 바람이 들어 쓴 일기는 반 연서가 되고 말았다. 딴에는 괴까다롭게 고른다고 고른 말들인데도 그만 괴발개발 써내려간 열없는 외고백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인간의 감정도 인간만큼이나 간사해서, 만사가 분주하게 튀어오르는 한낮엔 멀뚱멀뚱하다 공기마저 내려앉은 밤이 되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의식의 안방문을 스르르 열고 들어온다. 잠이라도 일찍 들었다면 꿈에서나 자리를 내주었으면 그만인데, 어젠 그렇게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만 항복해버렸다. 딴엔 떠올릴 사람을 떠올리며 진지하게 써내려갔지만 역시 밤글이다. 일어나자마자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까맣고 하얗게 조각난 새벽들을 보며 다짐했다. 두 번 다시 밤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하지만 나는 또 굴복해 노트북을 켰다. 요 며칠 손일기만 쓰다 보니 모처럼의 모터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너무나 조용한 밤의 틈으로 웅웅웅 윙윙윙 낡은 소리가 난다. 고요의 균열을 비집어 스며든 조심스런 인공의 음향이, 그나마 또 안방을 차지하려는 감정을 꽁꽁 묶어두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음... 무슨 말을 해볼까.

내외로 많은 일이 있었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작년 이맘때, 그래도 제법 내 인생의 많은 것을 걸었던 그 순간을 이따금 돌이킬 적이 있다. 어떤 의미에선 대단치도 않은 때였건만, 내게는 또 다른 분기점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분기점을 딛으며 살아간다. 도약이나 퇴보 따위의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방향성과 같은 관념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한, 정말 말 그대로의 '인생의 분기점'이 누구에게나 있다. 객관적으로 크게 변모한 부분이 없다손 치더라도, 개개인의 주관적 혹은 감상적 인생에서 이전과의 단절 혹은 국면의 전환과도 같은 순간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내게도 몇 차례 있었고, 한동안은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그것이, 되새겨보면 작년 이맘때 예기치 않게 왔구나 싶다.

어떤 부분에선 이전의 내게로 되돌아갔지만 다른 부분에선 작별을 고했다. 어쩌면 그 '다른 부분' 중 몇몇과는 완전한 이별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 한동안 온전한 내 것이 되어준 시간, 내가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 나의 20대, 특히 20대의 중후반부야말로 내 인생에 주어졌던 유일하다시피 결이 다른 시간이었는지도. 작년 요 즈음을 통과하면서 만난, 그때의 지표 같은 아이는 예전의 나를 다시 마주보게 했다. 맞아, 나도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 시간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너와 많이 닮아 있었겠지. 너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니까, 나도 좋은 사람이 되었을 테지. 하지만 내 스스로에겐 그게 오롯하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치열하게 살아온 이의 뒷모습에 묻어난 시간에는 열정의 여열이 있다. 내게도, 아마도, 그래도 어디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는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 읽고 싶은 책과 하고 싶었던 공부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생각들에 파묻혔던 스물 몇 언저리의 나. 나는 그래도 꽤나 열심히 그 시간들을 내달렸다. 성공이라든가 스펙 같은 것들은 일절 생각지도 않고 그저 '알아간다는 것'에 함뿍 취했던 날들. 자격증 한 장 자소서 한 줄로도 남기 어려운 시간들이지만 후회는커녕 언제든 생각만으로 되돌아가도 행복한 때였다. 스스로에게조차 강렬하게 느껴졌던 생명력이 몸짓 하나하나마다 발산되던 시간들. 아마도 내게도, 그 시간을 통과했던 여열이 조금은 남아있을까.

지표 같았던 아이를 만난 이후 두어 번 생각해보긴 했다. 갓 스물을 맞은 그 겨울, 내 선택이 달랐다면, 그래서 어쩌면 꼭 너와 같았을지도 모를 시간을 건너왔다면, 나는 너와 많이 닮게 되었을까. 지금 이 모습보다는 '확실한 안정'이 보장된 그 길을 걸었더라면... 이 길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과 같은 나일 리는 분명히 없었을 테니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반대로 너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너의 시간을 택한 내 자신을 나는 견딜 수 있었을까. 어드메의 평행우주에선 분명 그 길을 걸은 서른살의 내가 있을 것이다. 어느 차원의 평행우주에서 그 가능성을 택한 너를 닮은 나는 뭐, 그런 나를 만족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우주에서의 나는, 그런 나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나는 적어도 내 선택에 후회한 적이 없다. 물론 지금은, 하지 말아야 할 방황을 하는 중인 서른을 맞아버렸다. 지금과는 별개로, 나는 나의 시간들에 떳떳하다. 나 자신을 사랑해 왔고, 알고 싶은 건 뭐든 알려 했다. 나의 시간들은 움츠러들고 울퉁불퉁했던 때는 있었지만 적어도 내 자신에게 비겁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낯 뜨거워서 누구에게도 물어보진 못했지만, 나의 20대 내내 내게 해주었던 누군가의 말처럼, 내게 아직까지도 생명력이 느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그 시간들 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의 내겐 얼마만큼의 온도감이 느껴질까. 사실 좀 객쩍다. 내가 얼마나 치열했던가, 가장 치열했던 순간으로부터 오늘 이 시간의 나는 얼마나 멀어져 있나.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이따금 지표 같은 그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내가 걸었을 길을 지나온 그 아이는, 그 길에서 차곡차곡 자기 자신을 쌓아왔다. 이 시간을 건넜어도 이만큼 성실하게 살아왔다면 이런 사람이 되었겠구나 싶을 정도로, 아이는 깊고 단단하게 자기를 만들어냈다.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나도 내가 선택한 이 시간에 책임을 지자고. 내 시간들에 진행형의 열기를 지피자고. 생각해보니 아무렴, 내 나이에 여열이 웬말인가 말이다.

그래서 또 한 번의 분수령을 넘어온 요즘의 나는 달리고 있다. 언제나 한끗 차이로 잡지 못해왔던 것들을 위해. 서른 해 간 머금고 살아왔던 걱정을 조금씩 허공에 흩뿌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잔 생각일랑 모조리 게워내고 그저 힘껏 이 순간들을 들이켜야지. 들이킨 시간의 조각들이 돌고 돌아 내 인생에 잔잔한 흔적을 남겨준다면, 아주 먼 훗날 이날들을 떠올릴 때 기분 좋은 미열 정도는 누군가의 손끝에 닿을 수 있겠지. 아직까진 아무것도 모를 이 시간들이래도.

지난 일기가 너무 한숨과 눈물로 점철됐던지라 불편하던 차에, 열심히 살겠다는 말을 한새벽의 힘을 빌어 참 길게도 썼다. 이래서 어둔 때 쓴 글은 찢어 버려야 한다더니 참말이로구나...



'비밀의 화원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익숙함  (0) 2017.01.08
오한의 크리스마스  (0) 2016.12.23
거기까지인가  (0) 2016.10.17
일상의 소중함  (0) 2016.09.19
연락  (0) 2016.09.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