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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디어샬럿 2016. 8. 22.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p.34)



같은 곳에서의 세 번째 면접.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본인은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후련함과 상실감 사이,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달래려 집어든 책에서 저 문장과 맞닥뜨렸다.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헤밍웨이의 문장은 짧고 단단하다. 한 치의 군더더기도 용납할 것 같지 않으리만치 견고하다. 문장처럼 성품도 강건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그의 문장의 진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조금은 다르다. 모진 시간들이 딱지처럼 내려앉은 노인의 놓을 줄 아는 달관이 묻어난다.

어쩌면 그는 그리 강한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헤밍웨이는 평생 우울증과 전쟁 후유증에 시달렸다. <노인과 바다>라는 백조의 노래를 남기고, 그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토록 단단해보이는 인생이었지만 실은 누구보다 아팠던 날들이었을지도. 타인에게 위안을 줬지만 정작 자신은 불행했던 삶이라니. 어딘지 슬픈 아이러니다.

짧지만 간단히 읽을 수 없는 책. 책을 덮고서도 짙은 여운이 목울대를 꾹꾹 눌러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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