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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초체험 (初體驗) (?)

by 디어샬럿 2015. 6. 12.

 

 

  조짐이 보였던 건 벌써 몇 주 전이다. 잠자리에 들 적마다 속이 더부룩했다. 신경의 안정을 틈타 전해지는 몸의 뜬금없는 신호는 은근스러우면서도 진한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법. 건 땅에 싹 돋듯 터오르는 별의별 걱정을 애써 꾹꾹 누르며, 단순히 과식으로만 탓을 돌리고 있던 터였다.

 

  장염이었다. 예의 완벽한 증상과 함께. 요 며칠 찬밥 처리한다고 저녁엔 거의 볶음밥을 해 먹었다. 딴엔 중화요리 흉내낸답시고 파기름이다 고추기름이다 두반장이다 잔뜩 두른 채였다. 거기다 수제 카페라떼랍시고 우유에 베트남 커피까지 돌돌 타서 입가심 했더랬다. 장염 바이러스에 먹이를 떠다 준 셈이다. 생전 겪어본 적 없던 증상이라 쉽게 생각했다. 장염은 정말이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었는데... 묘하게 당혹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슬프다.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과신한 게 탈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믿을 게 줄어들어간다는 말이라더니. 이젠 정말 건강 제대로 신경 써야겠구나 싶다.

 

 

 

 

  같은 '통증'이랍시고(?) 골라본 Good Morning Heartache. 트럼펫 주자인 크리스 보티의 연주에 질 스콧의 진득하면서도 깊은 음색이 덧입혀졌다. 딱 요즘 재즈의 느낌. 세션과 질 스콧이 경쟁과 협력의 선을 오가며 선보이는 애드립이 일품이다. 원곡은 빌리 홀리데이가 불렀다.

 

 

 

 

  아무렴 내겐 오리지널 버전이 더 좋다. 전성기 목소리의 녹음본이라 다행이다. 비 오는 어느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다정하게 농염한 노래. ...아,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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