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가 벌써 넉 달이었다. 언제 이만큼이나 왔지? 가만히 손 꼽아보고서 깜짝 놀랐다. 단단한 시간에 부딪쳐 부서진 날들이 이리저리 흩날린 듯한 허술하고 성긴 책장. 이지러진 책들에서 새삼스런 시간의 흐름과 덕지덕지 달라붙은 타성이 느껴진다. 한숨이 나왔다.
책들은 바뀐 방에서 백 삼십여 일을 뒤죽박죽 엉켜있었던 것이다. 앞뒤옆 엉망으로 꽂혀 척력처럼 서로를 밀어내려는 녀석들을 가까스로 정리했다. 근 열 시간이었다. 이사다 뭐다 버린 게 많아도 천오백 권은 거뜬히 넘는 것들이었다. 아빠와 엄마의 젊음과 나의 오늘이 꽂힌 책처럼 기립한 공간. 파편처럼 흩어진 시간의 잔해들을 꽁꽁 모아둔 이곳은 언제나 좋다. 간만에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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