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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꿈이 내게 말을 건넸다

by 디어샬럿 2016. 9. 11.

 

어제는 꿈을 꿨다. 사실 꾸지 않는 적이 드문 편이다. 그럼에도 어제 꿈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으레 꿈의 말미에 이르면 아, 이 꿈은 기억할 수 있겠구나 싶은 호기로움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비집고 들어오는 법이다. 그러나 지각이란 생각보다 강해서, 기억하리라 마음 먹었던 그 말미의 순간부터 꿈은 우로보로스 뱀 같은 현실의 세계에 우걱우걱 잡혀먹히기 시작한다. 종내에는 맥락을 모두 잃은 채, 안개 같은 이미지만 남아 머리를 둥둥 떠다니고 마는 것이다. 남는 건 오늘도 꿈을 꾸었다는 사실 뿐. 꿈의 서고엔 이야기다운 신간이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힌다.

그런데 어젠 좀 달랐다. 나는 진즉에 졸업한 고등학교 교실에 있었다. 3학년 때 반임을, 꿈속의 나는 알아차렸다. 나는 왼쪽 창가에 접한 가장자리 분단 통로쪽에 앉았다. 교실은 당시 우리반 아이들로 가득했다. 참을 수 없으리만치 시끄러웠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순간적으로 당시의 내가 반장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마도 꿈이란 찰나의 틈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닐까 하는 것이, 이십 여 년 이상의 몽중경험(!)으로 깨달은 내 나름의 지론이다. 이따금 현실적 각성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는 탓이다. 어제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꿈속의 나는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끄럽냐, 조용히 좀 하자, 떠들지 좀 마라... 이제와서야 좀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반은 당시 문과 내에서 가장 시끄럽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북적대는 목소리의 틈바구니에서 목청을 돋우며 고3 반 아이들에게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바로 "조용히 하라"였다. 그야말로 늘상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꿈속의 나 역시 어리둥절해졌다. 늘 들었던 말이면서 이렇게까지 모를 듯한 표정을 지을 이유가 있나? 장면이 갑자기 바뀌었고, 교실엔 서너 명의 친구들만이 남았다. 반장, 우린 떠들지 않았어. 오늘 우리반 다들 조용했는걸. 나는 황당했다. 개중엔 고3때나 꿈속에서나 여전히 가장 시끄러웠던 S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제일 떠들었잖아. 아니야, 맹세코 나는 오늘은 진짜 한 마디도 안 했어. 서너 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했다. 당혹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누군가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증상이 있는데, 주변이 조용한데도 유달스레 본인은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거래. 너무너무 고요한 곳에서도, 증상에 감염된 당사자는 자신의 주변이 항상 견딜 수 없이 시끄럽다는 거야. 근데 이게 전염성이 엄청 강하다는데.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말을 하는 건 개중 나와 가장 친한 축이었던 H였다. 십 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꿈속에서조차 그녀는 거짓말이란 걸 할 줄 몰랐다. H가 아닌 걸 맞다고 말할 애는 아니었다. 그럼 내가 정말 그 '무언가'에 걸려버린 거겠지. 꿈속의 나는 당황했고, 그 순간 교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웬 남자 하나가 나를 똑바로 보며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꿈속의 본능은 현실 이상으로 날카롭게 벼려 있었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도망가야 하는 때란 걸 직감했다. 앞문을 나서면 바로 계단이 있었다. 나는 그대로 내달렸다. 어쩜 이런 것까지 당시의 교실과 똑같았는지. 그나마 익숙한 길이니 빨리 탈출할 수 있으려니 싶어 다행스런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꿈속에선 제대로 달려지지가 않았다. 외려 천천히 걸어오던 남자가 어느덧 바로 등 뒤까지 가까워진 통이었다. 꿈에서조차 나는 땀이 났다. 남자의 손엔 주사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주삿바늘이 내 어깨에 닿으려는 찰나, 총천연색이었던 배경이 돌연 세피아 빛으로 흐릿해지나 싶더니 깊은 수면에서 차차 건져올려지듯 각성이 섞여들었다. 잠에서 깬 것이다.

일어나 꽤 멍하니 있었다.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딱히 의미를 찾기보단, 너무 또렷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꿈이었다. 새삼스럽게 열아홉일 적의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무시하진 못할 측면이지만 그렇게까지 애절하게 그리워하기엔 좀 뜬금이 없다. 그렇다면 역시 나도 모르게 쌓였던 스트레스인가? 올 초 읽은 프로이트의 책에서 그랬다. 내면의 긴장상태가 지속되면 꿈에서 고함 등의 '자기파괴적' 행위가 발현된다나. 어렴풋하지만 그렇게 기억한다. 스스로가 느낀 역치까지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최근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 편이 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늦새벽과 풋아침의 경계였다. 어슴푸레하게 설익은 빛이 어둠의 농도를 흩뜨리고 있었다. 나는 잠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섰다. 모처럼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자연히 눈이 감긴다. 눈꺼풀의 장막이 내려오니 무대 뒤에 숨어있던 생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항상 나의 일부를 부정해왔다는 것.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도 그 중 하나였겠지. 분명 내 어디엔가 긴장이 응어리져 왔을 텐데. 항상 이걸 외면했다. 그만큼 나 자신과의 대면을 소홀히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안의 어디에 어떤 덩어리가 뭉쳐지고 커지고 굴러다니고 있는지, 내가 지금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불확실성과는 확실히 달랐다. 내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요사이 내게 얼마나 있었던가. 내가 꿈꾸는 나를 좇느라 정작 지금의 나를 돌보지 않은 건 아니었는지. 꿈이 꿈을 통해 전언을 건넨 셈이다. 나를 돌아봐 여기 지금. 나에 다다르기 위해선 나를 다져야만 한다.

참새 소리가 잦아든 틈으로 까치가 머리를 빼고 울었다. 차가워진 밤을 견딘 풀잎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어느덧 백로였다.

 


# 영감과 훈련 모두 지속적인 독서와 성찰을 통해 강화된다. (…) 우리는 기존 작품이 어깨를 딛고 이 글쓰기의 세계에 들어온다. 수세기에 걸친 생각, 성찰, 이야기, 꿈에서 나온 기존 작품들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글을 읽음으로써, 만인 공통의 뿌리에 내려가 닿음으로써 배운다. (p.16)

# 당신은 '편집자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다. 편집자 자아란 글을 쓰려 할 때마다 아직 부족하다며 사사건건 참견하는 자아를 말한다. 지금 당장은 내면의 편집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놓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때는 중간에 멈추지도 말고, 썼던 글을 지우지도, 다시 읽어보지도 말고 써내려가야 한다.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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