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편린 사이/책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김경욱

by 디어샬럿 2016. 8. 23.




언더그라운드 밴드로 출발한 너바나의 불가사의한 상업적 성공은 밴드의 멤버들조차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당황할수록 대중적 인기는 높아만 갔다. 높이 날수록 추락에의 욕망은 강해진다. 21세기의 물질문명을 주도하는 컴퓨터 디지털 산업이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되었듯이 그 물질문명을, 탐욕스러운 기계들을 깨부수라고 울부짖는 밴드들도 차고에서 출발한다. 삶의 아이러니란 그런 것이다. (p.36,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중에서)



유독 어느 시대가 그려지는 문장이 있다. 내용과 무관하게, 그저 문장만으로도 시간이 품은 공기를 물씬 풍겨대는 글이 있다. 내게는 김경욱 작가가 그런 사람이다. 그의 문장에는 90년대 말의 감성이 꾹꾹 눌러 담겨있다. 새파란 화면의 PC통신, 어른 발바닥 만한 시티폰, 경제위기가 남기고 간 음울한 공기가 감도는 듯한 글들. 비유가 촘촘하게 들어찬 문장, 어딘지 철저한 문어체의 단어들 탓도 있을 거다. 어쨌든 그의 글은, 내게 '밀레니엄 둠' 같은 인상을 준다.

솔직히 김경욱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다. 소위 '김경욱 식'의 플롯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의 이야기는 썩 조밀한 편이 못 된다. 어느 글에서나 빈 술병과 횟빛 재가 반쯤 남은 담배꽁초와 가래로 찌든 재떨이 따위가 어지럽게 흩어진, 90년대 홍콩영화를 글로 옮겨놓은 듯한 특유의 분위기를 피해갈 수 없는 점도 그닥 내키지 않았다. 글의 틈마다 스며든 찌뿌둥한 음울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다. 뒷심이 약한 글 스타일도 항상 사람을 힘 빠지게 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빛나는 '대중적' 감각과, 사회문제를 녹여낼 줄 아는 특유의 날카로움이 매력적인 글들이었다. 성인이 되고서 처음으로 산 현대문학 소설도 그의 책이었다. 틈틈이 어느 수상작 모음집에서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들여다보곤 했다. 그냥, 참 반가웠다. 김경욱이란 작가를 떠나, 아마도 한 인간으로서의 인지였던 것 같다.

그리고 2016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그가 선정됐다. 기쁜 마음이 울컥 들었다. 요사이의 이상문학상 대상 연령대가 낮아진 추세라, 이이는 영 힘든 건가 싶었다. 친숙한 이가 그토록 고대하던 좋은 소식 같았달까. 열없지만 그랬다. 신년의 이상문학상 모음집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 모처럼 떠올라 다시 읽었던 김경욱 단편집.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