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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나만의 감사

by 디어샬럿 2018. 4. 9.


공연한 마음에 조금 미안했다. 하필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 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결 너그러워지게 된다. 이유를 묻는다 한들 그 역시 마뜩한 대답은 하지 못할 터이다. 사람이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분 - 이라 쓰고 심보라 읽는다 - 을 늘 짊어지고 산다. 어쩌면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내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른다. 요는, 같은 상황에서 - 라곤 하지만 나 같으면 그 상황에서 절대 그런 말은 안 했을 거다 -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된다면 나 역시도 이성적으로 대답해줄 순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좀 잔잔해졌다.

과분한 말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가 그 정도의 말까지 들어도 되는 걸까, 너무 감사한 와중에 낯이 뜨거워졌다. 조금은 부끄러웠다. 가까스로 도달한 것뿐이라,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긴장해버린 터라 아쉬움이 짙다. 그럼에도 감사하다. 온 마음으로 감사하고픈 사람과 순간들이다. 빠짐없이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더 감사하게 된다. 못 견디게 고마운 것도, 놓으려니 정이 들어버린 것도 조금씩 쌓여간다. 이제야 나의 온기가 스미기 시작한 시공이, 행여나 권태의 흔적이 돼 버리지 않게 긴장을 놓지 말 것. 일상의 틈을 마주할 때마다 감사하고, 따뜻한 시선 한 쪽 말 한 마디에 은혜를 되새기며, 닥쳐올 모든 가능성에 겸허하고 겸손해야지. 나의 지평에 남은 작은 발자국에도 감사하고 미미한 온기조차도 사랑해야지. 미워하기엔 감사한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들이니, 사랑함으로써 이겨버릴 테다.


그나저나 고작 이 공간에 쓰는 일기조차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니, 그건 조금 슬프다. 공유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늘어가는 걸까. 구태여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쌓이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게 남겼던 이야기들이 이리저리 튀어 원치 않았던 동정으로 되받게 되니 - 오랜 망설임 끝에 하나씩 암호를 더 만들어 가야겠단 데 생각이 닿았다. 내가 편히 믿고 남기는 글일지언정 내가 허락하지 않은 말이 공유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하는 이가 이렇게나 많다니, 새삼 놀라 글 한 자에도 몇 번이고 생각이 머물렀던 며칠이었다. 한동안은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써야지. 굳이 친절할 필요가 없는, 나만 아는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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