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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2

하늘로 날아간 보라색 나비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들은 건 지난달 말이다.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고, 최전선에서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여생을 바치며 사셨다. 당시 일본군이 어린 소녀들에 자행한 행위의 실상을 만천하에 드러내신 분이자, 그들의 잔혹함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가 닿을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으셨던 분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전쟁 피해 여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응원을 보태셨고, 당신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나라에 2011년 대지진이 발생하자 그 누구보다 먼저 구호금을 보내신 대인이었다. 나는 먼 발치에서나마 할머니를 뵌 일이 있었다. 정대협에서 주최하는 수요집회에서였다. 20대의 나는 복수전공생이니 어찌 됐든 절반은 역사학도라는 의무감과 함께, 같은 여성으로서 겪.. 2019. 2. 2.
<뿌리 이야기>, 김숨 “당신은 천근성 쪽일까?” 어떤 포도농장들은 포도나무들 사이사이에 민들레나 토끼풀 같은 잡풀을 심기도 한다는 걸 그는 모르는 듯했다. 포도나무가 물을 얻으려 잡풀과 경쟁하느라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천근성인 포도나무 뿌리가 태생적인 기질을 거스르고 땅속 깊이 내리면 생산량은 줄어들지만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을, 수평을 지향하는 천근성 식물과 수직을 지향하는 심근성 식물을 밀식하면 뿌리의 모양과 성장 특성이 달라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심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경쟁하듯 키 재기를 하면서 서로를 도태시킨다는 것을, 천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영역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말려 죽인다는 것을. - 김숨, --- 올해 이.. 2015.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