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ber Soul, 전설이 된 청년들의 낭만을 찬양하며 지금보다 약간 덜 추운 때, 이를테면 늦가을 정도 될까. 11월 초순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덜 여미어진 옷깃 틈새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훅훅 들어오는 때, 맵싸한 공기에 그만 양 볼이 얼얼해지기 시작하는 때, 그맘때면 으레 생각나는 게 이 앨범이다. 1965년 12월 초에 출시된 비틀즈의 6집 앨범 Rubber Soul. 그즈음의 영국 공기만큼이나 칙칙하고 짙은 녹빛의 앨범 자켓이 인상적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겨울을 앞둔 알싸한 바람이 코 끝을 맵게 스칠 것만 같다. 컷을 눈으로 스윽 훑자마자 비정상적이게 크고 선명해서 장난스러운 듯도 한 타이틀이 시야에 들어온다. 알알하고 중후한 분위기를 멋지게 골려주려 작정이라도 한 듯 떡하니 붙어있는 양을 보면, 이렇게나 다른 느낌들이 이토록 어울리기도 어지간히 .. 2014. 12. 30. 대심문관 ::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트르 도스토옙스키 -- 이봐, 알료샤, 모든 인간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그 고뇌로써 영원히 조화를 보상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그 속에 끌어들여야 하느냐 말이야? 그걸 나한테 말해줄 수 없겠니?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고통을 겪어야 하고, 그 고통으로써 조화를 보상해야 하는 건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재료 속에 끼어들어 남을 위한 미래의 조화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거냐? (p.400) -- 광야에서의 첫째 물음은 바로 이런 뜻을 지니고 있는 거야. ...그것은 "누구를 숭배할 것이냐?" 하는 의문이지. 자유를 누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괴롭고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는 한시 바삐 자기가 숭배할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인간은 .. 2014. 12. 29. <소설가의 일>, 김연수 소설을 쓰겠다면, 의 마지막 장면을 항상 기억하기를.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쓰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 김연수, 2014. 12. 28. 크리스마스의 콘서트 올해 저녁은 유키 구라모토 콘서트였다. 이란 이름으로 리처드 용재 오닐, 디토 오케스트라에 클래식 보컬 그룹 로티니까지 합류한 크리스마스 특별 공연. 덕분에 근 2년 만에 예술의전당엘 와 봤다. 한창 다니던 5~6년간 본 적도 없던 형형색색의 조명이 여기저기서 떴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연말 공연을 본 적은 없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음악만큼이나 엄격한 무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D 덕에 생전 앉아본 적 없던 박스석을 차지한 것도 감격이라면 감격이랄까. 합창석 혹은 3층 꼭대기석을 피해 처음 앉은 객석 다운 객석이다. 여길 위해 두 달 전에 예매했다며, D는 수줍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케스트라의 차이콥스키 선곡으로 공연은 시작됐다. 중 왈츠 파트. 모처럼의 실황이어선지.. 2014. 12. 27. Splendor in the Grass - Pink Martini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걸 무심결에 듣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간만에 만난 멋진 곡이다, 이런 분위기의 노래가 별로 취향이 아닌데도. 꽉 채워지지 않은 일상으로 침투한 나른한 여유가 한껏 묻어나는 뮤직비디오. 왠지 모르게 넋 놓고 보게 된다. 보정감을 최대치로 올려 쨍쨍하기까지 한 색감이, 고즈넉하기까지 한 컷 하나 하나에 기가 막히게 스며들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간주부 악곡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중 1악장. 곡의 전반적인 모티프로도 쓰였다. 클래식을 이렇게도 재해석할 수 있다니. 시간을 건넌 선율이 이런 방식으로도 숨을 쉴 수 있구나 싶다. 음악이란, 예술이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마르타 아르헤리치. 샤를 뒤투아가 지휘한 .. 2014. 12. 23. 서울의 오후 미처 몰랐던 서울, 날구름을 배회하던 해가 내려앉는 도시. 여기서 보면 이렇게나 작은 세상인데... 땅에선 느껴본 적 없던 열없는 연민과 함께. 남산 일대에만 흩날린 눈, 개와 늑대의 시간 무렵에. 눈구름이 좀 걷히니 강 너머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길 그렇게 살면서 이런 델 한 번 안 와 봤구나. 이 도시에 좀 더 정 붙일 거리가 생겼다. @ 남산 서울N타워 20141221 2014. 12. 22. 물욕과 죄의식 주말엔 풍월당엘 들렀다. 연말 정기세일이었다. 행사 첫날인데도 몇은 품절이 임박해 있었다. 아바도의 말러 1번이라든지 클라이버의 베토벤 5번과 7번, 카라얀의 차이코프스키 따위들. 나조차도 갖고 있는 명반들이니 당연했다. 호로비츠의 전곡 연주 실황, 첼리비다케의 브루크너와 브람스, 하이페츠의 희귀 녹음본 그리고 EMI의 마지막 레이블들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최대한 품위가 넘치게 찍은 사진과 온갖 찬사가 가득한, 심지어는 금장까지 둘러진 호화로운 커버에 자꾸만 홀린 듯 손이 뻗쳤다. 순간 얼마 없는 돈과 좁은 연남동 방이 오버랩 됐다. 입 안이 썼다. 애써 외면하고 매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클라이버 사후 헌정반 딱 한 장을 구매했다. 함께 한 D는 요요마의 이름 모를 곡을 찾아 온 앨범을.. 2014. 12. 16. 이전 1 ··· 24 25 26 27 28 29 30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