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잊지 말고
작년 이맘때의 기억이 없다. 불과 딱 1년 전인데. 애써 돌이키고 싶지도 않지만 구태여 떠올려보려 해도 시절 내내 진득하게 눌러붙은 불안과 분노나 실망의 끈적한 흔적만 간신히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블로그에 남긴 글이나 드문드문 썼던 일기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을 건너왔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을 뻔했다.
오로지 횟빛으로 점철된 기억의 단면이다. 날짜들이 부옇게 흐러져 이내 시계 바깥의 영역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의심하고 내게 좌절했던 날들. 내 안의 소용돌이와는 상관 없이 흘러가는 바깥 세상을 보며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던 시간들이었다. 때론 인간으로서의 모멸과 을로서의 굴욕에 치를 떨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의 습격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의지나 생각과 전혀 무관하게 저마다의 자의에 따라 해석되곤 했던 나의 말과 행동들과, 그를 따라다니는 제삼자의 언어들에 소리치고 싶은 날들도 더러였다.
이맘때의 그 사건 후 딱 1년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난 것 같다. 그 일을 떨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때 그 사건은, 시공을 남김없이 흡수해 버리는 거대 중력장을 지닌 블랙홀처럼 그해 3월 무렵까지의 내 시간들을 몽땅 빨아들였다. 언제고 침투해 오는 원망과 가시 돋친 말들에 떨며, 고요한 분노와 불신에 대책 없이 노출됐다. 반짝 머물렀던 그 길로의 며칠을 제외하면, 정말로 그즈음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어느 우주에서나 떠돌고 있을 그 시간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직은 조금 무섭다.
이래저래 지내다 보니 해가 흘렀다. 이만하면 됐나 싶다가도, 그 ‘한 끗’을 넘겨짚는 바람에 선한 의도들을 왜곡되게 한 듯한 하루의 끝. 작년과 같은 말들이 오가는 그 현장에서 나는 또 한 번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다. 급작스런 변화에 서로가 예전만큼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기어이 감정적인 말들이 오고 가게 돼 버렸다. 딱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나를 향한 진심 어리고 조심스런 조언. 모처럼 함께 한 퇴근길에서 대리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 왔다. 일방적인 조언이 아니었기에 더 감사했다. 까마득하고 미숙한 나를 위한 조심스런 마음에 그만 울컥했다.
대리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걸어왔다. 되돌아보니 작년 이맘때 나를 살린 건 필사적인 감사였다. 감사에 매달리며 감사했고 용서를 찾아 헤매며 용서했다. 필사적으로 감사하니, 마음밭에 몰아치는 서운함이 물러나기 시작한다. 오늘의 시련 역시 나를 깨우치기 위한 의미들일 뿐. 탓하지 말고 주저하지도 말며 단지 배우고 깨달으면 될 일이다. 오늘을 잊지 말고, 시련을 외면하지 말 것. 그리고 가장 소중한 건 역시 나. 나를 절대 잊지 말자고, 지친 하루의 막바지에 무거운 마음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굳히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