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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감사

감사의 기록

by 디어샬럿 2018. 1. 11.


발령 이후, 특히 이 업무를 맡게 된 후 하루 하루 나 자신에 대한 회의와 마주했다. 오늘은 좀 피해갔다 싶으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나의 모자람에 결국은 또 짙은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이따금 생각했다. 회사는 나의 무엇을 보아준 걸까. 내 뒤를 조용히 맴돌던 말들과 기대들을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요 최근에 더 부쩍 그런 생각을 했다. 감사해 마지않아야 하는데, 묵직한 미안함만 앞섰다. 실은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실수를 안 하는 날이 정말 하루도 없는 데다 기본도 아닌 기초적인 것들조차 모르는 나 자신을 느낄 때마다 더...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나를 채워주었다고 믿어왔던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나는 무얼 했나... 싶었다.

오늘 정말 큰 실수를 했다. 혼이 나는 거야 당연하니 상관 없다. 그 정도면 내가 저지른 일에 비해 혼을 내신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쩜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을 만드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언제까지 이럴 거니. 진짜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 왜 자꾸 바보 같이 구니. 왜, 왜... 눈물까지 나 버렸다. 오늘 진짜 최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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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거르고 멍하니 보도자료를 보고 있는데 실장님께서 부르셨다. 커피는 마시느냐, 뭘 마시느냐. 아메리카노 빼곤 다 마십니다. 그래, 그럼 믹스 하나 타서 반반 하자. 우리 회사 말로 ‘반띵’ 커피를 타 들어갔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라. 6개월까진 다 그렇게 헤맬 수밖에 없다. 네가 이 일 말고도 할 일도 앞으로 많을 거고, 원래 위로 보내기 위해 밑바닥에선 그렇게 수집하고 깨지고 하는 거다. 어차피 위로 올라가면 ‘딱 한 줄’이다. 그러니 너무 혼자 아등바등 고민할 필요 없다. 벽에 부딪힐 땐 물어봐라. 실수는 늘 있을 수 있으니 괜찮다. 그리고 밥 꼭 챙겨먹어라. 몸 상하면 안 된다. 아침에 너무 빨리 나오지도 마라...


말로 다 못 할 정도로 감사했다. 무뚝뚝한 말들이 조심조심 풀어내는 진심에 또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 실장님 밑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 와 매 순간 감사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났구나. 왠지 힘이 나 탕비실 냉장고에 잠자던 두유를 깨워 꺼내 마시며 쓰는, 잊지 않으려 급히 남기는 감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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