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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사회 ‘성실’과 ‘관용’의 이면 물질적 재화나 노동력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것들과 같은 논리에 따라서 생산되고 소비되기 위해서 관계는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전통적인 인습이나 사회적 의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일반적이 된 기능적 관계와는 양립할 수 없는 예의범절이나 에티켓의 종언이다. 그러나 예의범절이 무너졌다고 해서 곧 자발적인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관계 그 자체는 산업적 생산과 유행의 체계에 지배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발성의 반대물이기 때문에 자발성에 관한 모든 기호를 지니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성실함의 신앙'에 대한 묘사에서 리스먼이 지적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미 언급한 '따뜻함'과 '배려'에의 맹신이나 부재의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기호와 강제적 의례에의 신앙과 같은 종류의 신앙이다.. 2023. 10. 16.
이해한다는 것의 기만에 대하여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글을 써대는 저를 보고는 이상한 애야, 라고 간단하게 이해해버렸겠지요. 아빠는 제가 쓴 문장들에 줄을 그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네가 아니야. 너는 이 생각들에 줄을 긋는 사람이야. 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겁먹지 말고 가만히 지켜봐. 그다음에 너는 그 생각에 줄을 그어 지울 수 있어. 지금은 공책에 써서 지우지만, 나중에는 머릿속에.. 2023. 9. 29.
사랑스러운 것들을 새기기 어젯밤 연달아 본 두 편의 영화엔 물기가 서려 있었다. 이야기의 끝을 잡으며 잠을 뒤척였고, 매듭짓지 못한 것들이 이어지는 한 주를 맞으며 몸이 무거웠다. 또 조금 못난 모습을 보였고, 또 가슴 철렁한 순간들을 맞았다가 ㅡ 감사한 찰나들과 다시 만났다. 더없이 부족함에도 찾아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끝까지 힘을 냈다. 한없이 모자란 나를 품어주시는 큰 마음들처럼, 나도 작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좀 더 보듬고 새기자고 생각하는 퇴근길. 2023. 5. 30.
허무를 삼키며 다잡는 마음 허무는 답지않게 진득하다. ’허무‘라는 단어가 울대를 드밀고 혀 끝으로 나와 세상에 나설 때, 그 언어는 기어이 입안에 헛헛하고 텁텁한 기운을 남기고야 만다. 심지어 어떤 허무는 사람을 슬프게 한다. 나름대로 몰아붙인 것들을 뒤로 한 채 너무나 급작스럽게 맞딱뜨리는 끝 - 낭떠러지- 에 이르러, 또 한 번 짙은 허무에 무릎을 휘청이며 나는 또 이 단어의 위력을 실감하고야 말았다. 잘 해왔다곤 감히 말하지 못해도 많은 것들을 뒤로, 뒤로 기약하며 꾸역꾸역 달려온 길이었다. 불현듯 허무는 안개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단어의 ‘무(無)‘가 ’무(霧)‘와 같은 음을 공유한다는 게 우연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허무는 참 짙다. 도와주신 분들이 눈 앞에 스치고, 이내 자꾸만 스며서 조금 울었다. 미욱한 .. 2023. 5. 23.
틈새를 챙길 것 바쁘다는 이유로 내버려둔 틈이 보란듯 내게 소리치는 것 같은 하루였다. 나의 틈새는 내가 가장 약해진 찰나를 언제나 놓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고, 예의를 지킬 것. 언제나 온 마음으로 상대와 순간을 살필 것. 틈새를 챙길 것. 스스로의 무심함에 분노가 치밀면서도, 그 찰나조차도 감사하게도 과분한 것들을 주시고 도닥여주시는 마음들에 자꾸만 울게 됐던 하루를 시간 속에 흘려보내며 - 잊지 않겠노라고 남기는 어떤 하루와 새삼스런 마음들. 2023. 4. 12.
모쪼록 다정할 것 벼렀던 를 드디어 봤다. 삶이, 나의 우주가 다시 한 번 너무나 소중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 영화로써 투영된 나의 이면들을 어떻게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모쪼록 나의 이 우주는 내 멀티버스 중 가장 다정한 곳이었으면, 그 어느 곳에서든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삶에 존재함에 감사한 지금 이 순간들이 이어졌으면 - 하고 바라고 매일에 감사하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지만, 오늘 나의 우주는 또 한 번 무색하리만치 다정함이 퇴색됐다. 의 탱화식 포스터처럼 잠깐 다채로웠던 나의 우주는 실망과 찰나의 분노의 더께로 횟빛으로 변했다. 온전히 나로 인한 것이었다. 불필요하고도 가장 나약한 방식으로 나는 오늘 어느 순간 다시 투사가 되었다. 모쪼록 다정할 것. 쪽잠에서 깬 한새벽에 이르러, 업무.. 2023. 4. 11.
기록해야만 하는 감사를 위해 새해가 밝자마자 분주했다. 이 일을 하고서부터 쭉 그랬으니 어느덧 만 3년째다. 올해는 더 그랬던 것 같다. 또 한 번 중요한 순간에 마주한 헤어짐과 만남에 휩쓸릴 뻔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버텨냈다, 는 말이 적절한 조금의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서 시작된 날들. 세 번을 해 왔지만 여전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그 날들을 보냈다. 어제로 77일째였다. 사람 때문이라는 말 외에는 더 형언할 길이 없는 날들이었다. 어떤 한계 앞에선 부끄러워 숨어버리고만 싶고, 더없이 실망스러운 순간들로 소비되는 나의 밤들엔 때로 정말 울고 싶었다. 욕심 탓이라면 탓일까.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뜯어고치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밤을 꼬박 새웠다. 마감일 3주 전부터는 이틀에 한 번.. 2023. 3. 19.